10세 소년이 해변을 산책하다 찾아낸 3,000년 전 고래 유골
2026년 9월 초의 어느 주말, 10세 소년 조지(George)는 부모와 함께 북아일랜드 아일랜드마기(Islandmagee)의 포트머크 항구(Portmuck Harbour)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썰물로 물이 빠진 젖은 모래사장에서 이상한 형태의 단단한 물체가 모래 위로 살짝 드러났다. 조지는 쪼그려 앉아 모래와 자갈을 걷어냈고, 길이 약 30센티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새 부리 모양의 뼈를 발견했다.
소년이 우연히 발로 딛게 된 이 뼈는, 나중에 거대한 고래 두개골의 일부분으로 공식 확인되었다.
얼핏 평온해 보이는 이 해변은 결코 평범한 장소가 아니다. 19세기 말과 1980년대, 아일랜드 섬 전체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공룡 화석이 바로 이 해안선에서 출토된 바 있다.
사진: 해변에서 드러난 화석과 발견자의 표식. 출처: BBC News / Family
모래 밖으로 드러난 뼈의 길이는 성인 팔뚝 정도에 달했으며, 두개골 전체 구조의 뒷부분에 해당했다. 젖은 모래와 자갈 깊숙이 묻힌 화석은 너무 무거워 발견자 일가족이 현장에서 쉽게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얕은 만으로 들어온 심해 잠수 챔피언, 자연 좌초 확률은 희박하다
런던 자연사박물관 포유류 부서 전문가들이 표본과 사진을 정밀 감식한 뒤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 이 두개골은 대양 깊은 심해에 서식하는 잠수의 명수, 민주둥이고래(Cuvier’s beaked whale)의 것이었다.
민주둥이고래는 수심 3,000미터에 이르는 칠흑 같은 심해까지 잠수할 수 있어 해양 포유류 중 가장 깊은 잠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주 서식지는 대서양의 아조레스 제도나 비스케이만처럼 수심이 깊은 원해 지역이다.
아일랜드 고래 및 돌고래 연구 그룹(Irish Whale and Dolphin Group) 소속 지질학자 이언 엔랜더(Ian Enlander)는 수심이 얕은 아일랜드해에서 민주둥이고래가 살아있는 상태로 자연 좌초된 기록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아일랜드해의 평균 수심은 약 60미터에 불과하다. 수천 미터 심해에 적응한 민주둥이고래에게 이 바다는 얕은 웅덩이나 다름없다.
심해성 고래가 스스로 얕은 해역으로 헤엄쳐 들어와 포트머크 해변에 자연적으로 좌초되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엔랜더는 두개골의 매장 상태가 자연스럽지 않으며, 고대 인류가 의도적으로 이곳에 가져다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사진: 출토된 고래 두개골 화석 근접 모습. 출처: BBC News
현장에서 출토된 플린트 석기, 인위적인 해체 작업 흔적을 암시하다
발굴 현장에서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고래 두개골과 정확히 같은 지층에서 바로 맞닿은 채 출토된 여러 점의 플린트 석기였다.
가공된 플린트 석기의 존재는 이 유물의 매장 연대를 약 3,000년 전 청동기 시대로 끌어올린다. 3,000년 전은 동아시아 대륙에서 상나라 말기이자 주나라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다.
현장의 발굴 정황 또한 매우 이례적이었다. 해변 전체에서 발견된 것은 오직 이 거대한 두개골 하나뿐이었으며, 주변에서 갈비뼈나 척추뼈, 지느러미 뼈 등 몸통 부위의 골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성체 민주둥이고래의 몸무게는 보통 2~3톤에 달해 일반적인 가정용 SUV 차량 한 대의 무게와 맞먹는다. 고대 해안 정착민들이 해변에서 좌초된 고래를 해체했다면, 수 톤에 달하는 고기와 기름은 거주지로 운반해 가고 무겁고 살점이 적은 두개골만 해변에 남겨두었을 것이다.
무거운 두개골을 운반한 연구진, 이골을 통한 정밀 연대 측정에 착수하다
고고학자 케이티 맥모너글(Katy McMonagle)이 이끄는 연구진이 긴급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물을 머금은 화석이 매우 무거웠기 때문에 연구진은 조간대에서 화석을 안전하게 인양하기 위해 상당한 장비와 인력을 투입해야 했다.
화석은 현재 보존 처리와 정밀 세척을 위해 벨파스트의 보관 시설로 옮겨졌다. 세척과 보존 작업에는 약 일주일이 걸릴 예정이다.
세척 작업은 화석의 풍화와 균열을 방지하는 동시에 핵심적인 연대 측정 샘플을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다행히도 두개골에서 가장 단단하고 부식에 강한 부위인 이골(고실포, tympanic bulla)이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연구진은 이골에서 소량의 샘플을 채취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탄소 14의 붕괴율을 이용한 측정법)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 검사를 통해 두개골의 정확한 연대를 확인하고, 실제로 3,000년 전 청동기 시대 유물이 맞는지 최종 입증하게 된다.
사진: 고래 뼈 화석을 조사하는 자연사박물관 연구진. 출처: BBC News
도살 흔적 검증 대기 중, 청동기 시대의 식단이 다시 쓰일 수도 있다
이 두개골이 해변에 남겨진 배경에 대해 엔랜더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청동기 시대 해안 주민들이 해변에 좌초된 고래를 발견하고, 현장에서 거대한 고래고기 잔치를 벌인 뒤 살점을 모두 발라내고 두개골만 남겨두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고고학 팀은 현재 두개골 표면에 석기로 고기를 해체할 때 생기는 도살 흔적(butcher marks)이 남아 있는지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연구진은 도살 흔적 가설이 현재 검증 단계에 있으며 아직 최종 확인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세척이 끝난 후 현미경 정밀 검사를 거쳐 뼈에 남은 자국이 석기 칼날에 의한 인위적 절단 흔적인지, 모래와 자갈에 쓸린 자연 마모 흔적인지 명확히 가려내야 한다.
만약 도살 흔적이 최종 확인된다면, 이 두개골은 청동기 시대 인류가 심해 고래라는 막대한 해양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이는 3,000년 전 해안 주민들이 육지의 가축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회가 찾아왔을 때 집단을 조직해 수 톤에 이르는 바다의 거수를 해체하고 생존 자원으로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참고 링크:
- BBC News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