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레이저 포인터를 쫓는 고양이를 보다 보면 고양잇과 동물 특유의 날렵한 몸짓과 폭발적인 순발력에 감탄하게 된다. 동물원에서 사바나 초원을 질주하는 치타를 볼 때도, 오직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빚어진 듯한 길고 유연한 골격 구조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오랫동안 고생물학자들은 화석 골격의 외형을 근거로 수만 년 전 북미 대륙의 초원에도 토종 치타가 살았을 것이라 굳게 믿어왔다. 그러나 셀 출판사(Cell Press)의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된 최신 고대 DNA 염기서열 분석(ancient DNA sequencing) 결과는 지난 100년간 이어져 온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흔들었다. 고대 DNA 분석이란 수만 년 전 화석 유해에 미량으로 남아 있는 유전 물질을 추출해 해독하는 기술로, 고대 화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유전자 친자 확인과 같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크루즈 캠퍼스의 분자생태학자 몰리 카샛-존스턴(Molly Cassatt-Johnstone) 박사가 이끈 연구진은 멸종한 트루먼 아메리카치타(Miracinonyx trumani)의 화석 유해를 정밀 분석했다. 유전체 분석 결과, 이 종의 가장 가까운 현존 친척은 아프리카치타가 아닌 퓨마(쿠거)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전자 증거에 따르면 아메리카치타 계통은 약 260만 년 전에 퓨마와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진짜 아프리카치타와는 이미 약 470만 년 전에 결별했다. 이번 발견은 한 세기 동안 ‘아메리카치타’라 불려온 맹수가 사실 ‘스포츠카의 외형을 가진 퓨마’였음을 선언한 셈이다.
3만 1000년 전 화석이 부른 반전: 과학자들은 그저 퓨마를 찾고 있었다
연구팀의 출발점은 작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연구진은 캐나다 유콘 준주의 블루피시 동굴(Bluefish Caves)과 어퍼 쿼츠 크릭(Upper Quartz Creek)에서 발굴된 약 3만 1000년 전의 화석 표본 3점을 분석하고 있었다. 화석이 발굴된 위치는 지금까지 알려진 아메리카치타의 서식 범위보다 훨씬 북쪽이었기에, 학자들은 처음에 이 뼈들이 평범한 북방 퓨마의 화석일 것이라 짐작했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화석에서 고대 DNA를 추출하고 게노믹 시퀀싱을 진행했다. 그런데 데이터가 나오자 연구진 전체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3점의 뼈는 퓨마가 아니라 진짜 아메리카치타의 것이었다. 카샛-존스턴 박사는 이 우연한 발견이 “거대한 발견의 눈사태를 일으켰다”고 회고했다. 이 한 번의 반전이 해당 종의 진화 역사를 송두리째 다시 쓰는 계기가 되었다.
유콘에서 발견된 새 표본들은 아메리카치타의 서식 범위를 북쪽으로 대폭 확장했다. 이전까지 학계가 발견한 화석들은 대부분 오늘날의 미국 본토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햇살이 내리쬐는 남부 플로리다주에서 북부 그레이트플레인스에 이르렀다. 캐나다 화석의 발견은 이 빙하기 포식자가 강력한 기후 적응력을 바탕으로 북미 대륙 전역을 누볐음을 확증해 주었다.
사진: 북미 지도: 기존 화석 발굴지와 이번 연구의 유콘 및 와이오밍 신규 표본 위치. 출처: M. Cassatt-Johnstone et al./Current Biology 2026, 사이언스 뉴스 전재
260만 년 전에 갈라진 계통: 유전자 데이터가 치타를 가계도 본류에서 배제하다
전통적인 고생물학 연구에서는 골격의 형태가 종 사이의 유연관계를 가늠하는 핵심 기준이었다. 아메리카치타는 아프리카치타처럼 길고 가느다란 사지, 확장된 비강, 전력 질주 시 많은 산소를 들이마실 수 있는 넓은 기도를 지니고 있었다. 이 때문에 여러 세대의 고생물학자들은 두 동물이 형제 종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DNA 염기서열이 보여준 진화의 계통수는 전혀 다른 길을 가리켰다.
분자시계(molecular clock) 분석에 따르면 아메리카치타와 현대 퓨마(Puma concolor)의 공통 조상은 약 260만 년 전에 살았다. 260만 년 전은 북미 대륙에서 본격적인 빙하기가 시작되던 시기다. 두 고양잇과 혈통은 바로 이때 갈라졌다. 반면 진짜 아프리카치타(Acinonyx jubatus)와의 분기 시점은 약 47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의 먼 조상이 아직 직립보행조차 하지 못했던 머나먼 지질 시대의 일이다.
470만 년과 260만 년의 격차는 유전학적으로 건널 수 없는 혈통의 거리를 의미한다. 유전 데이터는 아메리카치타가 퓨마 계통에서 파생된 갈래이며, 치타속(Acinonyx)이 북미로 건너와 확장된 것이 아님을 명확히 보여준다. 즉, 겉모습만 치타를 닮았을 뿐 유전적으로는 먼 사촌에 불과했던 것이다.
시속 90킬로미터 질주 체형의 비밀: 두 고양잇과 혈통이 같은 옷을 입게 된 까닭
유전적으로 퓨마에 더 가깝다면, 아메리카치타는 왜 치타와 판박이인 외형을 진화시켰을까? 생물학에서는 이를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라고 부른다. 서로 다른 생물이 유사한 환경 압력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독자적으로 비슷한 형질을 발달시키는 현상이다. 고래와 상어가 물속을 헤엄치기 위해 유선형 몸매를 갖추게 된 것과 같다.
수백만 년 전 북미 대평원의 주된 초식동물은 최고 시속 9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속도로 질주하는 가지뿔영양(pronghorn)이었다. 탁 트인 황야에서 도시 도로 제한속도에 버금가는 초고속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아메리카치타의 조상은 막대한 선택압을 받았다. 세대를 거치며 다리뼈는 길어지고 몸체는 군살 없이 가벼워졌으며, 그 결과 멀리 아프리카에 있는 치타와 똑같은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다.
사진: 복원도: 황야에서 큰코영양(사이거)을 추격하는 치타를 닮은 날씬한 고양잇과 동물. 출처: 사이언스 뉴스
이 골격 구조의 유사성은 100년 넘게 인간 과학자들을 감쪽같이 속였다. 그러나 유전자 증거는 아메리카치타가 비록 전력 질주에 특화된 스포츠카 외피를 둘렀을지언정, 그 유전적 바탕은 퓨마 가문에 확고히 뿌리내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육상에서의 고속 추격에만 매몰되지 않고, 퓨마 혈통 특유의 유연하고 다양한 생존 전략을 보존했던 것이다.
초원 포식자의 생선 식단: 범고래 수준의 질소 동위원소 검출
계통 분류의 대반전 외에도, 고대 DNA와 화학 분석은 아메리카치타의 뜻밖의 식단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화석을 대상으로 질소 동위원소 분석(nitrogen isotope analysis)을 실시했다. 이 기술은 뼈 조직에 축적된 무거운 질소(질소-15)의 비율을 측정하여 생물이 먹이사슬의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를 추적한다. 동물이 살아생전 먹은 모든 식사가 뼈라는 장부에 고스란히 기록되는 셈이다.
와이오밍주 대평원에서 출토된 표본은 전형적인 육상 육식동물의 수치를 나타냈다. 이들은 주로 육상 초식동물을 사냥했다. 하지만 유콘 준주에서 나온 새 표본들은 이례적으로 높은 중질소 수치를 나타냈다. 이 수치는 해양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범고래(오르카) 수준에 필적할 정도였으며, 이는 북방의 아메리카치타가 주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았을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밴더빌트대학교의 고생태학자 라리사 디샌티스(Larisa DeSantis) 박사는 “풍부하면서도 사냥 중 큰 부상을 입지 않을 수 있는 먹이 자원을 활용하는 것은 최상위 포식자에게 훌륭한 윈윈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혹독하게 추운 고위도 북방 환경에서, 위험한 육상 추격 대신 강을 거슬러 오르는 풍부한 물고기를 사냥한 것은 이 맹수가 지닌 경이로운 생태적 적응력을 보여준다.
100년간 잘못 불린 이름을 바꾸다: 진화에는 모조품이 필요 없다
이번 연구가 던지는 가장 깊은 울림은 학계와 대중을 오랜 세월 오도해 온 명칭을 바로잡았다는 데 있다. 카샛-존스턴 박사가 강조했듯, ‘아메리카치타’라는 이름은 사람들에게 특정한 치타식 행동과 생태를 연상시키며, 이는 이 종의 고유성을 이해하는 데 전혀 적절하지 않다.
약 250만 년 전 북미 대륙에 처음 등장해 약 1만 6000년 전 빙하기 거대 포유류들과 함께 멸종할 때까지, 트루먼 아메리카치타는 오랜 세월 지구상에 번성했다. 먼 곳에서 이주해 온 침입자가 아니라, 북미 대륙의 독자적인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진화 경로를 완성한 토종 동물이었다.
고대 DNA 시퀀싱이 밝혀낸 진실은 단순한 형태학적 분류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풍요롭다. 이 고대 맹수를 다시 바라보는 일은, 자연의 진화가 인간이 붙인 이름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채롭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치타라는 편견의 틀을 벗겨낼 때 비로소, 북미 대륙의 독특한 이 맹수는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참고 링크:
- Science News: Was the ‘American cheetah’ a cheetah at all?
- Current Biology 원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