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고대 암각화에 관한 학술 세미나에서 고고학자 존 하먼(Jon Harman)은 화성 표면을 찍은 두 장의 비교 사진을 보았다. 한 장은 익숙한 적갈색 지표면이었고, 다른 한 장은 NASA의 알고리즘으로 처리되어 빨강, 초록, 노랑 모자이크로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세부 지형이 칼날처럼 선명하게 드러난 사진이었다. 이 강렬한 시각적 대비는 고대 벽화를 연구하던 그의 직관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주의 한 동굴에서 자신이 직접 찍었던 사진에 이 알고리즘을 돌려보았다. 그러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맨 바위벽에서, 이전까지 아무도 본 적 없던 노란색 사람 형상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육안은 시간을 이길 수 없지만, 방정식은 이긴다
바위벽에 그려졌던 그림은 실제로 사라진 적이 없었다. 수천 년에 걸친 풍화와 햇빛 노출, 안료의 산화로 인해 색상 간의 대비가 인간 망막의 해상 한계 밑으로 짓눌려 평탄해졌을 뿐이었다. 본래의 색채는 사람의 눈으로는 도저히 구별할 수 없는 좁은 색차 구간 속으로 희석되어 있었다.
사진: 아메리카 원주민 암각화 앞에 서 있는 존 하먼. 출처: NASA / Jon Harman
물리적으로 압축되어 버린 광학 정보 앞에서 맨눈의 관찰은 무력했다. UC 버클리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의료 영상 분야에서 일하다 은퇴한 존 하먼은, 우주 탐사 기술의 부산물을 색 공간상의 픽셀 간 거리를 강제로 벌려놓는 통계학적 변환 기법으로 전환시켰다.
이 알고리즘이 등장하기 전까지 고고학자들은 자연광과 미약한 육안 감각에만 의존해 바위벽의 무늬를 어림짐작해야 했다. 수 세기 동안 쌓인 먼지와 광물 침전물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벽을 쌓아 올렸다. 인간 눈의 색 분해 능력이 생리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 그 벽은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터였다. 디지털 영상 처리 기술의 학제 간 융합은 인간 시각 체계가 강요해 온 이러한 수동적 한계를 단숨에 깨뜨렸다.
빽빽한 픽셀을 강제로 펼쳐내다: 역상관 스트레칭
화성 사진 처리에 쓰인 그 기법은 역상관 스트레칭(decorrelation stretch)이라 불린다. 1978년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디지털 영상처리 그룹을 이끌던 짐 소하(Jim Soha)는 통계 분석에 널리 쓰이던 카루넨-뢰베 변환(Karhunen–Loève Transform, KLT)을 디지털 이미지의 색상 강조에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인공위성 센서가 다중 스펙트럼 영상을 보낼 때, 빨강·초록·파랑 채널의 데이터는 물리적 상동성 때문에 분포가 매우 빽빽하게 뭉쳐 있어 사람의 눈으로는 지형의 경계를 분간하기 어렵다. 역상관 스트레칭은 이처럼 한곳에 몰려 있던 본래의 색상 분포를 강제로 펼쳐진 새로운 직교 공간으로 사상하여 뚜렷하게 분리해낸다.
카루넨-뢰베 변환의 수학적 기초는 에너지 압축의 극대화에 있다. 데이터 자체의 공분산 행렬로 결정되는 직교 기저에 고차원 데이터를 투영함으로써, 신호가 지닌 대부분의 분산을 더 적은 수의 무상관 주성분으로 집중시킨다. 원격 탐사 영상에서는 지표 물질의 반사 스펙트럼이 여러 파장 대역에 걸쳐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기 때문에 합성 사진이 어둡고 대비가 낮아지기 쉽다. 이렇게 얽혀 있는 상관 신호를 행렬 연산을 통해 풀어내면, 칙칙한 배경 아래 숨겨져 있던 미세한 지형과 성분의 차이를 바깥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
1996년 같은 연구 그룹에서 NASA 테라(Terra) 위성에 탑재된 일본의 광학 장비 ASTER 응용 연구를 맡고 있던 로널드 앨리(Ronald Alley)가 계산 속도와 정확도를 대폭 개선하고 논문으로 정리했다. 앨리가 논문을 남긴 것은 사용자가 도구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누군가는 글을 남겨야 한다는 기술자다운 소박한 직업의식 덕분이었다. 훗날 하먼이 구글 검색으로 발견하게 된 이론적 토대가 바로 이 문서였다.
사진: 처리 전: 풍화로 인해 거의 보이지 않게 된 암벽 위의 인물 형상. 출처: NASA / Harman
사진: 처리 후: 다른 형상 뒤에서 노란색 인물 형상이 뚜렷하게 드러남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주 산보르히타스 동굴). 출처: NASA / Harman
빛바랜 암벽화를 겹겹이 포개진 반투명 종이 뭉치에 비유한다면, 역상관 스트레칭은 최대 에너지 압축 원리에 따라 종이 사이의 극히 미세한 틈새를 억지로 벌려놓는 작업과 같다. 구겨져 있던 픽셀들이 색 공간 전체로 펼쳐지면, 원래 하나처럼 엉겨 붙어 있던 바위 표면과 빛바랜 안료, 광물 침전물이 각기 다른 색채의 극단으로 흩어지며 숨겨졌던 그림이 다시 빛을 보게 된다.
앙코르와트에서 발견된 200여 점의 숨은 벽화
하먼은 이 원리를 바탕으로 Dstretch라는 이름의 이미지 처리 플러그인을 개발했다(미국 국립보건원의 오픈소스 프로그램 ImageJ 기반). 그는 작업에 사용하는 색 공간(color space)의 선택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암벽화마다 최적의 효과를 내는 수치 색상 범위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자연 풍화를 겪은 안료의 RGB 값은 배경 바위와 거의 일치하므로 일반적인 RGB 색상 모델로는 분별력을 얻기 어려웠다. 하먼은 Dstretch에 YCbCr, LAB 등의 변환 색 공간을 도입하고, 암석 표면의 고유한 흡수 스펙트럼에 맞춘 전용 변환 행렬을 직접 설계했다.
이렇게 최적화된 색 공간 덕분에 컴퓨터 공학을 모르는 현장 고고학자들도 클릭 한 번으로 바위에 덧씌워진 시간의 껍질을 벗겨낼 수 있게 되었다. 이 도구는 곧 전 세계 유적지에서 강력한 범용성을 입증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지에서는 연구원 노엘 이달고 탄(Noel Hidalgo Tan)이 이를 활용해 중앙 탑 등에서 흐릿하게 지워졌던 200여 점의 벽화를 찾아냈다. 200이라는 숫자는, 수 세대에 걸쳐 손전등을 들고 육안으로 조사하던 방식을 디지털 영상 처리의 기술적 위력이 단숨에 뛰어넘었음을 증명한다.
이집트 베니 하산 고분에서는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 극히 보기 드문 박쥐와 돼지 그림이 확인되었다. 캐나다 앨버타주 라이팅온스톤 주립공원에서는 말을 탄 기수의 암각화가 선명하게 드러났는데, 이는 크로족 전사가 적대 관계였던 블랙풋족에게 남긴 도발적인 메시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노르웨이 서부 오르산 1(Årsand 1) 유적지에서는 기록된 적 없던 형상 15점을 찾아냈을 뿐 아니라, 기존에 알려진 형상 28점에서도 새로운 세부 무늬를 밝혀냈다. 15점의 새로운 도상과 28곳의 새로운 세부 묘사가 더해지면서, 알고리즘은 바위벽이 수천 년 동안 품고 있던 역사의 원본을 세상에 내어놓게 만들었다.
픽셀은 바위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Dstretch의 보급은 고고학계에 조용한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연구자들은 유적 표면을 긁어내거나 손상할 필요 없이, 카메라 한 대와 플러그인이 설치된 일반 노트북 한 대만 챙기면 된다. 이러한 비파괴적 데이터 발굴 덕분에 기후 변화와 인위적 훼손 위기에 처한 야외 암벽화들을 디지털 공간에 영구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 수개월이 걸리던 수작업 모사와 험난한 복원 과정은 단 몇 번의 마우스 클릭으로 줄어들었다. 전 세계 암벽화 연구는 그렇게 소리 없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하먼은 과거의 인류가 왜 이런 기이한 기호들을 그렸는지 현대인들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회고했다. 역상관 스트레칭 알고리즘의 역할은 잃어버린 신호를 건져 올리는 데까지이며, 그 기호에 담긴 뜻을 해석하는 일은 인간 학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1978년 NASA가 이 알고리즘을 짰던 이유는 수억 킬로미터 밖 붉은 행성의 흙먼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수학적 변환은 눈앞의 모든 픽셀을 공평하게 대한다. 한데 엉켜 있던 색채를 단호하게 떼어놓자,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던 고대의 사람과 박쥐가 바위 밖으로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참고 링크:
- NASA 기술 이전 및 스핀오프 공식 보도
- Gizmodo 보도
- Hacker News 커뮤니티 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