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엔트로피가 뒤흔든 공간 상식: 3차원 현실은 2차원 경계면의 홀로그램 투영인가

블랙홀 엔트로피가 뒤흔든 공간 상식: 3차원 현실은 2차원 경계면의 홀로그램 투영인가

과학우주

데이터 소스:Quanta Magazine

블랙홀에 물질을 집어넣다: 정보 용량은 오직 표면적에만 비례한다

이사를 위해 짐을 정리할 때, 사람들은 보통 상자의 부피를 보고 크기를 고른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50센티미터인 상자는 내부에 0.125세제곱미터의 공간을 갖는다. 일상적인 경험에 따르면 상자의 치수를 두 배로 키우면 내부에 담을 수 있는 옷의 양은 몇 배로 늘어난다. 인류의 상식 속에서 공간의 수용 능력은 본질적으로 3차원 부피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하지만 블랙홀 앞에서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이러한 상식이 완전히 무너진다. 1970년대, 물리학자 제이콥 베켄슈타인(Jacob Bekenstein)과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블랙홀의 양자 정보 용량을 측정하는 물리량인 블랙홀 엔트로피(black hole entropy)를 계산했다. 그리고 지극히 반직관적인 현상을 발견했다. 블랙홀 안으로 입자를 던져 넣었을 때, 그 정보 용량은 오직 바깥 표면적에만 비례하여 증가하며 내부 부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용기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들어갈 수 있는지가 순전히 표면적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면, 내부에 펼쳐진 광활한 3차원 공간은 마치 불필요한 장식처럼 느껴진다. 1990년대 스탠퍼드 대학교 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드(Leonard Susskind)는 홀로그래피 원리(Holographic Principle)를 제안했다. 이 이론은 3차원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2차원 경계면에 완벽하게 인코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스킨드는 블랙홀이 문자 그대로 홀로그램이라고 지적했다. 처음 이 가설을 내놓았을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자신조차도 터무니없게 느껴졌지만 블랙홀의 역설을 풀 수 있는 모든 해법 중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길이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드 사진: 1990년대에 “블랙홀은 문자 그대로 홀로그램”이라는 가설을 제기한 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드. 출처: Quanta Magazine (Linda A Cicero, Stanford News Service)

전자기력은 상쇄되지만, 중력은 상자 내부 정보를 표면에 각인한다

일상에서 접하는 전자기력에는 양전하와 음전하라는 두 가지 전하가 존재한다. 만약 전하를 띤 입자들을 상자 속에 가득 채운다면, 양전하와 음전하는 내부에서 서로를 상쇄시킨다. 이때 상자 바깥에서 전기장을 측정하더라도 상자 내부의 입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중력은 전자기력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력에는 양의 질량만 존재하며 음의 질량이나 음의 중력 전하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자 안에 물질이 존재하는 한, 그 질량은 주변 시공간을 휘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이 왜곡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상자의 외부 표면까지 그대로 전달된다.

캐나다 페리미터 이론물리연구소(Perimeter Institute)의 물리학자 로랑 프레델(Laurent Freidel)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했다. 중력에는 상쇄할 수 있는 음의 전하가 없기 때문에, 상자 내부 물질 배치의 아주 미세한 변화라도 경계면 표면에 고유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중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상자를 물건으로 가득 채우는 것과 상자 표면을 물감으로 칠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동등하다. 표면에 새겨진 시공간의 곡률이 상자 내부의 모든 것을 단단히 붙잡아두기 때문이다.

1997년의 세 편의 논문, 수학으로 스노글로브 우주를 잇다

1997년부터 1998년 사이, 물리학자 후안 말다세나(Juan Maldacena)를 비롯한 연구진은 세 편의 기념비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AdS/CFT 대응(Anti-de Sitter / Conformal Field Theory duality, 반-드 지터 공간과 등각장론 쌍대성)을 제시했다. 이는 중력이 존재하는 3차원 입체 공간과 중력이 전혀 없는 평평한 2차원 경계면을 수학적으로 연결하는 도구다. 이 세 논문은 디지털 시대 이론물리학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문헌이 되었으며, 수만 건의 학술 인용을 기록했다.

이러한 수학적 쌍대성을 이해하기 위해 내부 공간을 둥근 스노글로브(스노우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스노글로브 내부는 중력이 작용하는 3차원 반-드 지터 시공간이다. 반면 스노글로브의 유리 표면은 중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양자역학의 법칙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말다세나는 엄밀한 수학을 통해 이 겉보기에 상반된 두 물리 세계가 본질적으로 같은 물리 법칙의 서로 다른 표현임을 입증해 보였다.

칭화대학교 물리학자 바르텍 체흐(Bartek Czech)는 생생한 비유를 들었다. 의료용 CT 스캔은 뇌 내부의 신경망을 재구성하기 위해 수백 장의 단층 촬영 사진을 필요로 한다. 반면 홀로그래피 원리가 뜻하는 바는, 뇌의 바깥 표면 사진 단 한 장만 찍어도 내부의 모든 신경망 디테일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다는 의미다. 회의론적 입장을 견지하는 에든버러 대학교의 레이섬 보일(Latham Boyle)조차도 수학적으로 이처럼 경이로운 일치를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홀로그래피 원리 개념 일러스트 그림: 홀로그래피 원리 개념 일러스트. 출처: Quanta Magazine (일러스트: Ada Zejun Shen)

우주 팽창과 양자 얽힘: 홀로그램 투영을 둘러싼 깊은 논쟁

스노글로브 모델은 수학적으로 대단히 정교하다. 하지만 인류가 실제로 살아가는 실제 우주는 안쪽으로 굽은 반-드 지터 공간이 아니다. 천문 관측 결과에 따르면 우주는 가속 팽창을 거듭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바깥쪽으로 굽은 드 지터 공간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홀로그램을 투영할 수 있는 자연스럽게 닫힌 스노글로브 유리 껍질 같은 경계면이 존재하지 않는다.

홀로그래피 이론 지지자들은 스노글로브 깊숙한 곳에 사는 개미가 외벽 유리의 곡률을 직접 감지할 수 없듯이, 현재의 인류 역시 그 개미와 같은 처지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회의론자인 보일은 다른 각도에서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블랙홀 표면에서 두 가지 형태의 엔트로피가 발생한다고 본다. 하나는 내부 입자들을 나타내는 부피 엔트로피이고, 다른 하나는 안팎의 양자 상관관계를 기술하는 얽힘 엔트로피(entanglement entropy)다. 보일은 홀로그래피 이론이 두 엔트로피가 모두 면적에 비례한다는 점을 물리적 동등성으로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브랜다이스 대학교 물리학자 브라이언 스윙글(Brian Swingle)은 중력과 양자역학이 결코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며, 사실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고 강조한다. 중력 자체가 근본적인 양자 얽힘으로부터 발현(창발)된 결과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술적 논쟁은 물리학계가 양자 정보가 시공간 자체를 어떻게 직조해 내는지 한층 깊이 파고들도록 이끌고 있다.

3차원 픽셀에서 0차원 점까지: 물리학자들이 재정의하는 현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물리학자 비제이 발라수브라마니안(Vijay Balasubramanian)은 현실의 본질에 대해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 번째 가능성은 2차원 표면이 진정한 물리적 실체이며, 3차원 세계는 2차원 큐비트(qubit)로부터 렌더링된 게임 화면과 같다는 시각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3차원 공간 자체가 실제 현실이고, 홀로그래피 쌍대성은 그저 기적적인 수학적 우연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세 번째는 둘 다 궁극적인 진실이 아니며, 훨씬 더 깊은 미지의 이론을 향한 대략적인 초안일 뿐이라는 해석이다.

버지니아 공대의 찰스 차오(Charles Cao)는 3차원 정보를 2차원 평면의 양자 상태 속으로 손실 없이 압축할 수 있음을 규명했다. 서스킨드 연구진은 최근 몇 년간 더욱 파격적인 홀로그래피 모델을 구축하여, 우주 전체의 정보를 단 하나의 0차원 양자점에 인코딩하려는 시도까지 펼치고 있다. 발라수브라마니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조차도 시간이라는 개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근원적인 구조로부터 창발된 환상일 수 있다고 추측한다.

블랙홀 엔트로피 측정부터 스노글로브 쌍대성 증명에 이르기까지, 홀로그래피 원리는 상식을 깨부수는 물리적 사실을 펼쳐 보인다. 중력에 음의 질량이 존재하지 않기에 경계면에 각인된 시공간의 왜곡은 내부의 배치를 고스란히 봉인한다. 이로써 상자를 가득 채우는 것과 표면을 물감으로 칠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완전히 동등해진다. 우리가 만지고 느끼는 3차원 현실은, 어쩌면 우주 저편 경계면에 새겨진 양자 정보가 쏘아 올린 정교한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참고 링크:

  • Quanta Magazine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