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로 무너진 열대우림: 보르네오오랑우탄 8마리가 먼 피난길에 오른 이유

산불로 무너진 열대우림: 보르네오오랑우탄 8마리가 먼 피난길에 오른 이유

과학기후변화야생동물보호

데이터 소스:BBC + ANTARA + AFP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넘기다 보면 야생동물 구조 영상을 흔히 접하게 된다. 2026년 10월 9일, 인도네시아 원시 밀림에서 전해진 방사 장면 하나가 큰 주목을 받았다. 어미의 배를 꼭 끌어안은 새끼 두 마리가 철창이 열리자마자 짙푸른 녹음 속으로 재빠르게 솟구쳐 올랐다. 산불 피해를 겪은 오랑우탄들을 안전지대로 이송해 자연으로 돌려보낸 올해 인도네시아 최초의 광역 방사였다.

자유를 되찾은 8마리는 심각한 멸종위기종인 보르네오오랑우탄(Pongo pygmaeus)이다. 인간과 유전적 유사도가 97%에 달하며, 생애 대부분을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보내는 대형 수목성 유인원이다. 이번에 새 보금자리가 된 서칼리만탄의 바투 냠부(Batu Nyambu) 보호림은 지금까지 화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다.

대중의 눈에는 가슴 뭉클한 동물 구출 작전으로 보이지만, 현장의 실상은 훨씬 가혹하다. 거센 산불은 태곳적 열대우림을 잿더미로 만들며 오랑우탄이 대대로 이어온 높은 나무 위 길목을 완전히 끊어놓았다. 원래의 서식지가 산산조각 나면서 남은 개체군을 품을 수 없게 되었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 수단이었다.

400제곱미터 고립지에 갇혀… 불길에 막혀버린 나뭇가지 하늘길

오랑우탄은 열대우림에서 가장 몸집이 큰 수목성 동물이다. 다 자란 성체는 팔을 벌린 길이가 키를 훌쩍 넘으며, 지상 수십 미터 높이의 우듬지(캐노피)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땅 위를 걷는 대신 촘촘히 얽힌 나뭇가지를 건너뛰며 이동하기 때문에, 끊김 없이 이어진 캐노피는 이들에게 하늘 위의 고속도로망과 같다.

지난 8월부터 수개월간 이어진 가뭄 탓에 번진 산불이 서칼리만탄을 덮쳤다. 화마는 자연림을 삼켜버렸고, 서로 이어져 있던 나무 위 길목은 막다른 골목으로 변했다. ‘마마 노피(Mama Nopi)’ 일가 4마리는 북카용의 고무나무 농장에 갇히고 말았다. 등 뒤에 있던 생태 통로(forest corridor, 수목성 동물들이 숲을 오가던 캐노피 연결망)가 전소되어 퇴로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

또 다른 어미와 새끼의 처지는 더욱 위태로웠다. 9월 18일, 수색 구조대는 약 400제곱미터 넓이의 아카시아 덤불에서 ‘마마 리파(Mama Lifa)’ 모자를 발견했다. 400제곱미터는 농구장 한 코트 남짓한 크기에 불과하다. 사방이 끝없는 기름야자 농장으로 둘러싸인 황량한 벌판에서, 이 외딴 덤불은 주변 수 킬로미터 내에서 유일한 안식처였다.

어미 오랑우탄은 새끼를 꼭 끌어안은 채 나뭇가지 끝에 웅크리고 있었으나, 숲 밖으로는 탈출할 수 있는 연결된 나무가 전혀 없었다. ‘마마 만(Mama Man)’ 가족의 대피 과정 또한 험난했다. 보호팀은 6월부터 숲 가장자리에서 이들의 동선을 추적해왔고, 9월 3일 불길이 턱밑까지 다가오자 비상 마취를 통해 가까스로 구출했다. 8월부터 10월 초까지 구조팀이 화마의 경계선에서 구출해낸 절체절명의 오랑우탄만 46마리에 달한다.

9시간의 험난한 대이동: 구조대원들이 어깨로 짊어진 피난길

동물을 구출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며, 이동 작전은 고된 지구력 싸움이었다. 이번에 방사된 8마리는 어미와 새끼 3쌍, 젊은 수컷 2마리로 구성되었다. 수의사 팀의 정밀 검진 결과 모두 건강 상태가 양호하며 야생 적응력을 온전히 갖춘 것으로 판정되었다.

새 서식지로는 서칼리만탄 크타팡(Ketapang)의 바투 냠부 보호림이 낙점되었다. 2만 3,000헥타르(축구장 약 3만 2,000개 규모)에 달하는 이 보호림은 풍부한 수자원과 자생 과일나무를 품고 있으며, 올해 산불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청정 구역이다.

거대한 유인원을 원시림 깊숙한 곳으로 옮기는 데는 지름길이 없었다. 차량 행렬은 패이고 거친 진흙길을 6시간 동안 덜컹거리며 달렸다. 이어 대원들은 무거운 철제 우리를 좁은 목선에 싣고 급류를 거슬러 1시간 동안 항해했다. 길이 완전히 끊긴 늪지대에 들어서자, 대원들은 우리를 어깨에 멘 채 깊은 진흙탕 속을 2시간 가까이 걸어서 이동했다.

대원들이 온몸으로 버텨낸 9시간의 릴레이 끝에 우리들은 마침내 방사 목표 지점에 닿았다. 묵직한 문이 활짝 열리자, 젊은 수컷 오랑우탄은 가장 가까운 거목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순식간에 20미터 높이의 허공으로 기어올랐다. 나이 든 어미 오랑우탄은 문턱에서 주변 안전을 꼼꼼히 살핀 뒤, 품 안의 새끼를 보듬으며 안정된 몸짓으로 높은 나무로 올라섰다.

이송용 우리에서 나온 어린 오랑우탄이 나무를 기어오르고 있으며, 주변에서 구조대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 이송용 우리에서 나온 어린 오랑우탄이 나무를 기어오르고 있으며, 주변에서 구조대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출처: Muffidz Ma’sum/YIARI/MoEF (BBC)

파괴된 녹색 통로: 불타버린 고향 숲은 생존자를 품을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왜 원래 살던 숲으로 돌려보내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 대답은 지극히 냉혹하다. 원래의 숲이 산불로 산산이 부서져, 대형 유인원 무리가 더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랑우탄은 열대우림 생태계에서 과일을 가장 많이 먹는 최상위 초식 동물이다. 성체 한 마리가 하루에 막대한 양의 야생 과일, 나무껍질, 어린잎을 섭취해야 한다. 충분한 먹이를 찾기 위해서는 수십에서 수백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연속된 숲이 필수적이다. 나무 위를 휩쓰는 산불이 상층 캐노피를 태워버리면, 울창했던 하나의 숲은 서로 단절된 수많은 파편으로 쪼개지고 만다.

원래 숲에 남겨진 생존자들은 극심한 식량 부족에 직면한다. 서식지가 급격히 좁아지면 영역을 지키기 위한 동종 간의 유혈 다툼도 격화된다. 불에 타 쪼개진 원서식지가 남은 개체군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다른 온전한 숲으로의 이주는 굶주림과 떼죽음을 막는 유일한 탈출구가 된다.

나이 든 오랑우탄이 우리 밖으로 나와 나무 기둥을 붙잡고 있으며, 마스크를 쓴 구조대원들이 거리를 둔 채 바라보고 있다. 사진: 나이 든 오랑우탄이 우리 밖으로 나와 나무 기둥을 붙잡고 있으며, 마스크를 쓴 구조대원들이 거리를 둔 채 바라보고 있다. 출처: Muffidz Ma’sum/YIARI/MoEF (BBC)

나무 위 길이 끊긴 오랑우탄들은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땅으로 내려와 농경지를 가로질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과의 접촉이 빈번해지며 부상이나 포획 같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다. 생존 개체들을 온전한 피난림으로 옮기는 것은 현시점에서 개체군 전체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조치다.

40년 만의 슈퍼 엘니뇨 위력: 타지 이주가 일상이 된 현실

산불이 그치지 않고 번지는 배경에는 기후 이상과 인위적 개입이라는 이중의 재앙이 자리 잡고 있다.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이례적으로 치솟으며 40년 만의 기록을 갈아치운 엘니뇨 현상(인도네시아 전역에 극심한 가뭄을 초래하는 기후 주기)이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그 여파는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인위적인 방화는 불길에 기름을 붓고 있다. 현지에서는 농경지 확보를 위해 숲을 베어내고 불을 지르는 화전 농업 관행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불에 잘 타지 않던 천연 이탄습지가 농장 조성을 위해 배수 처리되면서 바짝 마른 토양이 되었고, 이로 인해 작은 불씨 하나도 걷잡을 수 없는 지하 화재로 번진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지난달 경고를 발표했다. 현재 진행 중인 산불이 보르네오오랑우탄 전체 서식지의 52%를 집어삼키고 있다는 것이다. 오랑우탄 절반 이상이 화마의 직접적인 사정권 안에 놓여 있다.

야생 개체군의 기초 체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다. 세계자연기금(WWF) 통계에 따르면 100년 전 보르네오와 수마트라 섬에는 23만 마리 이상의 오랑우탄이 살았으나, 현재 두 섬을 통틀어 남은 수는 약 10만 4,000마리에 불과하다. 이는 소도시 인구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화마 앞에서, 먼 거리 이송은 야생동물 구조 단체들이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현지 구호단체 대표인 카르멜레 야노 산체스(Karmele Llano Sanchez)는 원시림이 불길에 포위되어 있는 한 안전지대로의 이주가 가장 확실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가혹한 기후 위기 속에서, 이러한 비상 대피 작전은 해마다 반복되는 정례 업무로 굳어지고 있다.

타지 피난은 임시방편일 뿐… 원시우림 보호가 근본 해법

이주를 통해 8마리의 목숨을 건져냈지만, 열대우림이 입은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하지는 못한다. 구조팀의 운영 총괄 아르기토에 란팅(Argitoe Ranting)은 이번 방사가 자연 속에서 실질적인 생존으로 이어져야 하며, 단순한 기계적 이송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건에 들어맞는 피난처 또한 무한하지 않다. 바투 냠부가 2만 3,000헥타르에 달하는 광활한 숲을 자랑하지만, 생태적 수용 한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아무리 건강한 보호림이라 하더라도 사방에서 몰려드는 피난 개체들을 끝없이 받아낼 수는 없다.

불길이 울창한 숲을 잿더미로 만드는 데는 며칠이면 충분하지만, 높은 나무들이 다시 자라나 캐노피를 이루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걸린다. 원거리 이주는 불길의 경계선에서 인간이 멸종위기 동물들을 위해 힘겹게 벌어다 준 일시적인 방어선일 뿐이다. 남아 있는 원시 이탄림을 온전히 지켜내고 인위적인 화재를 막아내는 것만이 오랑우탄들이 더는 피난길에 오르지 않게 만드는 근본적인 해답이다.

참고 자료:

  • BBC 보도
  • 인도네시아 안타라 통신(ANTARA) 보도
  • 프랑스 AFP 통신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