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들의 솔직한 고백: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다”
2026년,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SF 신인 문학상인 ‘호시 신이치상’ 제13회 공모에 총 2107편의 작품이 접수되었다. 주최 측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그중 491편이 ‘일부 AI 생성’으로 분류되었으며, 전체 응모작 대비 비율은 ‘4분의 1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는 최종 심사회 사회를 맡은 가가미 아키라가 심사 종료 후 직접 밝힌 내용이다.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심사 방식이다. AI 사용 여부는 심사위원들에게 전체 과정 동안 완전히 비공개로 부쳐졌으며, 블라인드 심사가 모두 끝난 뒤에야 비로소 통계 집계가 이루어졌다. 집계 결과를 확인한 가가미 아키라의 평가는 명확했다. “AI가 개입한 작품인지 아닌지 전혀 구별할 수 없었다.” 심사위원들이 앉아서 점수를 매기는 동안, 자신이 평가하는 글이 순수한 인간의 글인지 기계가 관여한 글인지 알지 못했고, 그 심사 결과 또한 흔들림이 없었다.
이 상의 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6년 제3회부터 호시 신이치상은 비인간 작가의 응모를 명문화하여 허용했으며, AI 원고는 1인 1편 규정만 지키면 합법적인 참가작으로 인정받아 왔다. 제도가 논란보다 한발 앞서 달리고 있었기에, 다른 문학상들은 이를 부러워할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셈이다.
그림: 대상 ‘게놈의 탑’ 공식 삽화. 일러스트레이터 후지모토 마사츠나가 모든 수상작을 위해 일관된 스타일로 삽화를 그렸으며, 주최 측은 AI 관여 작품도 별도의 차별적 표기 없이 정상적으로 발표했다. 출처: 닛케이 호시 신이치상 공식 웹사이트
세 명의 수상자, 세 가지 협업 방식
일반 부문 4개 수상작 가운데 3편이 제작 과정의 특정 단계에서 AI를 활용했다.
대상 수상작인 ‘게놈의 탑’(작가 샤미즈이)이 밝힌 AI 사용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질병 이름을 짓는 단 한 가지 작업뿐이었다. 단지 이 한 부분에만 쓰였음에도 주최 측은 해당 작품을 AI 지원 수상작으로 분류했다. 현재 통계 기준상 AI를 거쳤다면 모두 집계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우수상을 받은 ‘병행 자기 중재 주식회사’(작가 시지마 마도카)의 작가는 AI와의 협업을 ‘선별’ 작업에 가깝다고 묘사했다. 창작의 주도권이 한 문장씩 생성하는 것에서 후보들을 하나씩 걸러내는 것으로 옮겨간 것이다. 작가 본인은 이것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품을 발표하는 정당성을 훼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림: ‘병행 자기 중재 주식회사’ 공식 삽화. 작가는 AI 협업을 ‘글쓰기’가 아닌 ‘선별’이라고 표현했다. 최종 선택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가 초고를 누가 썼느냐보다 작가성의 핵심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출처: 닛케이 호시 신이치상 공식 웹사이트
과정을 가장 투명하게 밝힌 이는 또 다른 우수상 수상작 ‘Erinnerung’의 다키노우치 리노 작가였다. 그는 이 작품이 AI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첫 소설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챗GPT가 초고를 작성했고, 작가는 뒤섞인 대명사와 낡은 표현, 어색한 논리를 직접 다듬었으며 제목과 결말을 완전히 새로 썼다. 유전자 가위(CRISPR-Cas9)와 관련된 과학적 배경 자료 역시 작가가 직접 취재하여 채워 넣었다. ‘AI 초고 생성 + 인간의 전면 개작’이라는 세밀한 수준의 작업 내역 공개는 2026년 수상자 중 유일무이했다.
그림: ‘Erinnerung’ 공식 삽화. 2026년 수상작 중 AI 활용 과정을 가장 상세하게 공개한 작품이다. 챗GPT가 초고를 작성했으며, 대명사와 어휘, 결말은 모두 작가가 전면 재작성했다. 출처: 닛케이 호시 신이치상 공식 웹사이트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문학상 갈등
호시 신이치상의 사례는 예외적인 풍경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최소 33건의 문학상이 AI 판정 논란에 휘말렸으며 그 결과는 각기 달랐다.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구단 리에는 ‘도쿄도 동정탑’ 본문의 약 5%(전체 143쪽 중 약 1쪽 분량)에 챗GPT를 사용했다고 밝혔으나 수상이 유지되었다. 반면 2025년 알파폴리스 웹소설 대상에서는 대상작의 대부분이 AI로 작성되었다는 작가의 고백 이후 단행본 출간과 웹툰화 기획이 전면 취소되었다. 2026년 프낙(Fnac) 소설상 수상자 오렐리앙(Orélien)의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공쿠르상 1차 후보 명단에서 제외된 뒤, 10월 21일 출판사는 외부 감사 결과 작업 문서 메타데이터에서 AI 흔적을 발견했다며 계약을 파기했다. 작가는 그 직전까지 어떤 문장도 기계가 쓰지 않았다고 완강히 부인하고 있었다.
시각 예술 분야의 상들은 이미 똑같은 궤적을 밟았다. 2023년 브라질 자부치상(Prêmio Jabuti) 일러스트 부문 최종 후보작에 미드저니(Midjourney)의 이름이 버젓이 표기되어 있었다. 당시 심사위원 두 명은 미드저니가 AI 도구라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털어놓았고, 결국 생성형 예술의 등장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낡은 규정을 끌어와 실격 처리했다. 규칙은 언제나 창작자들의 실천 뒤를 쫓아간다는 사실이 2023년에 이미 입증되었던 셈이다.
탐지기의 ‘100%‘를 단어 세 개로 뒤집다
판별 체계 자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2026년 커먼웰스 단편 소설상에서 나타났다.
AI 탐지 기업 팡그램(Pangram)은 수상자 세 명의 작품을 ‘100% AI 생성’이라고 판정했다. 세 작가 모두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한 작가는 대여섯 판본에 달하는 육필 원고와 타임스탬프, 방대한 취재 기록을 제출했고, 심사위원단은 이를 검증한 뒤 세 작품의 수상을 모두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아시아 지역 수상자인 샤론 아루파라일(Sharon Aruparayil)은 흥미로운 대조 실험을 진행했다. 탐지기에 걸렸던 단락에 마라티어 단어 세 개를 추가하고 영어 단어 하나를 지우자, 똑같은 텍스트가 ‘100% AI’에서 ‘100% 인간’으로 순식간에 뒤집혔다. 한 편의 글이 세 가지 언어 사이에서 오락가락했고, 탐지기의 결론은 사소한 인위적 변화 앞에서도 속수무책이었다.
이미 활자화되어 출간된 과거의 작품들조차 의심을 피해 가지 못했다. 2025년의 한 수상자는 1년 뒤 팡그램에 의해 자신의 시가 ‘88% AI’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그 시가 이미 2018년에 발표되었던 작품임을 입증해 혐의를 벗었다. ‘플라자 프라이즈(The Plaza Prizes)‘는 탐지기 경고만 믿고 두 참가자의 자격을 박탈하면서도, 실제 AI가 얼마나 사용되었는지—‘사용되기는 했는지’조차—자신들도 알 길이 없음을 시인했다. 처벌은 내렸으나 구체적인 죄목은 증명하지 못한 것이다.
AI 탐지기는 왜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AI 탐지기의 기본 원리는 모델이 내놓는 출력물의 통계적 특성을 대조하는 것이다. 어휘 빈도 분포, 문장 호흡, 퍼플렉서티(혼잡도) 곡선 등을 비교한다. 문제는 이러한 통계적 특성과 인간 고유의 글쓰기 사이의 교집합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AI는 특정 문체를 흉내 내는 데 점점 더 정교해지는 반면, 인간의 글 또한 교정, 번역, 다국어 혼용을 거치면서 통계적 표준에서 쉽게 벗어난다. 아루파라일이 마라티어 단어 세 개를 집어넣어 벌어진 일은, 자신의 글을 탐지기의 학습 데이터 분포 밖으로 밀어낸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모든 통계적 탐지 기법이 지닌 태생적 취약점이다. 작가는 글의 분포를 능동적으로 옮길 수 있지만, 탐지 기준선은 언제나 과거의 낡은 분포 위에만 그어지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입증 책임의 방향이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탐지기가 100% AI라고 주장하면 작가가 손글씨 노트를 꺼내 들어 수상을 지켜낸다. 탐지기가 88% AI라고 낙인찍으면 작가가 과거의 출판 기록을 찾아내어 혐의를 씻는다. 다국어 글쓰기, 비원어민의 문장, 편집자의 대대적인 윤문을 거친 원고는 모두 탐지기의 오폭 구역에 놓인다. 그리고 프낙 소설상 사건에서 실제로 결정적인 유죄 증거가 된 것은 글 자체의 통계치가 아니라 작업 문서의 메타데이터, 즉 작가의 작업 과정 기록이었다.
유일하게 집행 가능한 단 하나의 규칙
33건의 사례를 종합해 보면, 규제의 강도와 집행의 신뢰성은 완벽하게 반비례한다.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려는 문학상일수록 오작동을 거듭하는 탐지기나 디지털 포렌식에 의존해야 한다. 반면 가장 개방적인 호시 신이치상은 단 한 가지만을 요구한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공개하고, 평가는 블라인드 심사에 맡기는 것이다. 가가미 아키라의 “구분할 수 없었다”는 말은 사실상 문제를 창작자들에게 되돌려준 셈이다. 심사위원도 구별할 수 없고 탐지기도 분간하지 못한다면, 문학상 규정에서 검증 가능한 유일한 변수는 작가의 솔직한 공개 여부뿐이다.
구단 리에의 5% 고백과 오렐리앙의 전면 부인 사이에는 이 문제의 본질적인 윤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검증 불가능한 현실에 맞닥뜨렸을 때 투명성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발각되지 않는 쪽에 도박을 걸 것인가. 앞으로 문학상들이 현실에서 지속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규칙은 호시 신이치상이 이미 밟아 온 경로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거짓말하는 자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정직하게 털어놓는 이의 비용을 영(0)으로 낮춰주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 닛케이 호시 신이치상 제13회 최종 심사회 리포트 및 응모 통계
- jamesyu.org: 2016년 이후 문학상 AI 논란 사례 모음
- 커먼웰스 단편 소설상 2026 AI 논란 보도
- 팡그램 탐지 신뢰성 논란 및 아루파라일 대조 실험 보도
- 프낙 소설상 및 공쿠르상 1차 후보 관련 보도
- 브라질 자부치상 미드저니 실격 사태 보도
- 해커뉴스(HN) 토론 (item?id=50199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