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 투하 81년 후,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존재할 수 없는’ 신형 다성분 합금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암호명 ‘리틀 보이’라 불린 원자폭탄이 히로시마 시가지 중심 상공 약 580m에서 폭발했습니다. 충격파와 열복사, 방사성 낙진이 도시 절반 이상을 휩쓸었고 폭발 당일에만 6만~8만 명이 사망했으며 그해 말까지 사망자는 14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로부터 81년이 지난 2026년 7월 말, 이탈리아 피렌체 대학교의 루카 빈디(Luca Bindi) 교수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히로시마만 해변 모래 속 유리 미세입자에서 지금까지 기록된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합금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합금은 머리카락 굵기보다 훨씬 얇은 불과 수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유리 입자 속에 감춰져 있었습니다.
이 물질이 탄생한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논문이 제시한 숫자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폭발 당시 화구의 온도는 섭씨 7,000도를 넘어섰습니다. 태양 표면 온도가 약 5,500도인 것과 비교하면, 1945년 8월 6일 아침 히로시마 상공에는 태양 표면보다 더 뜨거운 물체가 몇 초 동안 출현했던 셈입니다. 이 극단적인 온도로 인해 도시의 철근, 알루미늄 창틀, 구리 전선, 유리, 흙이 순간적으로 모두 기화하여 거대한 소용돌이 형태의 플라스마 구름으로 변했습니다. 이 구름이 팽창하며 식어가는 과정에서 기화된 물질들이 작은 유리 구슬 형태로 다시 응축되었고, 먼지와 함께 지상으로 떨어져 히로시마만 해변 모래 속에 80 넘게 묻혀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유리 구슬을 ‘히로시마이트(hiroshimaites)‘라고 부릅니다.
그림: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상공의 버섯구름. 출처: George R. Caron /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34개의 유리 미세입자 중 단 하나에서 발견된 특별한 흔적
연구팀은 수집한 34개의 히로시마이트 샘플을 주사전자현미경(SEM), 전자선 마이크로프로브(EPMA), X선 회절(XRD) 장비를 사용해 정밀 분석했습니다. 34개라는 숫자는 이번 연구가 얼마나 고된 작업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80여 년 전 폭발로 해변에 흩어진 수백만 개의 유리 구슬 중에서 과학자들은 하나하나 골라내어 분석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이전 연구들을 통해 이 유리 구슬들이 섭씨 1,800도가 넘는 환경에서 형성되었으며 주요 성분이 칼슘, 알루미늄, 규소임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일반 제철 용광로의 온도가 약 1,600도, 화산 용암이 1,200도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히로시마 폭발 당시의 주변 온도는 인류의 일반 산업 기술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을 훌륭히 뛰어넘는 극고온이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34개 샘플 중 단 하나에서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철-크롬 금속 파편들을 다수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의 파편은 평범했으나, 그중 유독 작고 특별한 입자 하나가 기존에 알려진 어떤 재료와도 일치하지 않는 성분과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논문 본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1945년 8월 6일 공중 폭발로 인해 형성되어 히로시마만 해변 모래에서 발견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다성분 합금을 보고한다.”
’존재할 수 없는’ 정교한 구조의 신합금
이 입자는 크기가 1,000분의 몇 밀리미터에 불과하지만, 철을 주성분으로 하여 크롬, 니켈, 망간, 몰리브덴, 규소, 알루미늄 등 총 7가지 원소가 섞여 있었습니다.
7가지 원소가 한데 섞이는 것은 매우 희귀한 현상입니다.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합금은 기본적으로 ‘한두 가지 금속이 주성분이고 나머지는 소량 첨가물’인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스테인리스강은 철에 크롬과 니켈을 섞은 것이고, 탄소강은 철에 소량의 탄소를 넣은 것입니다. 과거 재료공학계에는 ‘금속 종류를 많이 섞을수록 합금이 쉽게 깨진다’는 상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대만의 예쥔웨이(Jien-Wei Yeh) 교수가 ‘고엔트로피 합금(High-Entropy Alloy)’ 개념을 제안하면서, 여러 금속을 비슷한 비율로 섞으면 오히려 강도가 높고 열과 부식에 매우 강한 안정적 구조가 형성될 수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재료를 다성분 합금이라 부르며, 최근 30년 동안 재료과학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구 방향 중 하나입니다.
히로시마에서 발견된 이 합금이 특별한 이유는 결정 구조의 정교함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다성분 합금은 원자 배열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는 반면, 이번 입자는 AlAu4형 입방정 구조라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정교한 질서 구조를 형성했으며, 내부에는 변형된 이코사헤드론(20면체) 원자단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무질서한 찌개 속에서 완벽한 형태의 결정 얼음이 굳어 나온 것과 같은 격입니다.
그림: 논문에 소개된 신형 합금이 포함된 금속 미세입자 현미경 사진. 출처: Luca Bindi et al., 2026 (via arkeonews.net)
어떻게 이러한 구조가 형성될 수 있었을까요? 논문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화구가 도시 전체의 철강, 알루미늄, 구리를 기화시킨 후, 서로 다른 금속 원자들이 증기 구름 속에서 무작위로 섞였습니다. 이어 화구가 급격히 팽창하면서 온도가 순식간에 떨어졌고, 원자들이 일반적인 결정 격자로 배열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동결되어 극단적인 조건에서만 존재하는 ‘준안정(metastable)’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실험실에서 이런 구조를 만들려면 정밀한 용융과 초고속 급랭 과정이 필요합니다. 히로시마의 화구는 온도의 극대화, 원자 혼합, 급속 냉각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불과 몇 초 만에 완벽히 충족시키며 자연 상태의 극단 조건 실험실 역할을 수행한 셈입니다.
폭발력으로 신재료를 만들다: 인류의 숨겨진 역사
극단적인 파괴력을 활용해 재료를 만드는 시도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산업계에서는 이미 폭약의 폭발 충격파를 이용해 두 금속을 용접하는 ‘폭발 용접’ 기술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은 핵폭발을 이용해 석유와 가스층을 균열시키는 실험을 진행했으며, 소련은 1981년 통제 불능에 빠진 가스전 화재를 핵폭발의 압력으로 진화하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에는 방사선을 이용해 농작물 변이 품종을 만드는 ‘원자 가드닝’도 시도되었습니다.
더욱 직접적인 선례는 1945년 7월 미국 뉴멕시코주 트리니티 실험장에서 열린 인류 최초의 핵실험입니다. 당시 형성된 핵폭발 유리(트리니타이트) 속에서 2021년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준결정(quasicrystal)이 발견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트리니타이트 연구를 이끌었던 주저자가 바로 이번 히로시마 연구를 주도한 루카 빈디 교수입니다. 동일한 연구팀이 두 차례의 핵폭발 현장에서 지구상에 없던 새로운 물질 구조를 연속으로 찾아낸 셈이며, 이는 이번 히로시마 발견의 신뢰도를 높여줍니다.
그림: 피렌체 대학교가 공개한 공식 영상 《A New Material Born in the Hiroshima Fireball》 썸네일. 출처: youtube.com (Università degli Studi di Firenze)
논란: 이것은 정말로 1945년에 형성된 것인가
이처럼 신기한 발견에도 불구하고 과학계 일각에서는 샘플의 기원에 대한 신중한 의견이 제시됩니다.
회의론 측의 첫 번째 의문은 샘플의 수집 위치입니다. 히로시마이트 샘플은 폭발 중심지 현장이 아니라 히로시마만 해변 모래에서 채취되었습니다. 전후 80여 년 동안 항구 운영, 선박 운항, 공업 활동 등이 해안가에 다양한 흔적을 남겼는데, 모래 속 금속 미세입자가 전후에 유입된 현대 산업 물질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느냐는 지적입니다. 둘째, 1945년 폭발로 생성된 반감기가 짧은 방사성 동위원소들은 이미 전부 반감하여 현재 방사성 측정법으로 해당 입자의 정확한 연대를 측정할 수 없습니다. ‘1945년 형성’이라는 결론은 성분과 구조 모델링에 기반한 추론으로, 매우 합리적이지만 절대적인 수치로 입증하기는 어렵습니다. 해커뉴스(Hacker News)의 한 인기 댓글은 “‘자연 실험(natural experiment)‘이라는 단어가 너무 많은 추측을 담아내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반면 지지 측의 근거 역시 단단합니다. 논문은 다원소 금속 증기의 급속 냉축 예측 모델과 일치하는 미세 구조 분석 결과를 제시하고 있으며, 입자가 채취된 침적층은 이미 검증된 1945년 유리 응축물층과 정확히 동일한층에 위치합니다. 또한 엄격한 동료 심사(peer review)를 통과했으며, 트리니티 준결정 발견으로 검증된 전문 연구팀의 조사라는 점도 힘을 실어줍니다.
양측의 논쟁을 떠나 핵심적인 과학적 사실은 분명합니다. “극단적인 물리적 조건에서 완전히 새로운 원자 구조가 생성될 수 있다”는 현상 자체는 성공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논문 저자들 역시 단정적인 표현을 피하고 “~와 일치한다”라는 신중한 어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발견은 이처럼 신중하게 진실에 접근해 나가는 법입니다.
이 합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가장 실질적인 기대는 신재료 개발 가능성입니다. 이 합금의 원자 구조는 철-크롬-니켈-규소계 합금 연구의 새로운 설계도가 될 수 있습니다. 급속 고화 기술이나 금속 3D 프린팅을 통해 이와 유사한 구조를 재현해 낸다면, 강도가 높으면서도 고온과 부식에 극도로 강한 신소재를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원자로, 항공우주 엔진, 심해 탐사 장비 등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특성입니다.
둘째는 극단적 조건에서의 물질 행동에 대한 이해 증진입니다. 운석 충돌, 낙뢰, 화산 폭발 등 자연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극단적 현상이 일어납니다. 핵폭발 파편 연구는 우주에서 가장 격렬한 ‘재료 가공 방식’을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아울러 이러한 파편은 핵감식(nuclear forensics) 분야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미세 구조와 성분 분석을 통해 어떤 물질이 사용되었고 최고 온도가 얼마였는지 추적할 수 있어 핵불확산 검증에 실질적 가치를 제공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역사적 의미로 돌아가 봅니다. 히로시마는 무엇보다 14만 명 이상이 희생된 비극의 현장이자 도시입니다. 해커뉴스 토론방의 한 댓글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인류가 다시는 그날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과학자가 잿더미를 실험실로 바라볼 수 있는 전제는, 그 잿더미가 왜 생겨났는지를 잊지 않는 데 있습니다.
파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폭탄이 81년의 세월을 지나 재료과학에 새로운 씨앗을 남겼습니다. 전쟁과 과학적 발견 사이의 경계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히로시마만의 해변 모래 아래에는 어쩌면 더 많은 씨앗이 묻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씨앗들이 앞으로도 오직 현미경 아래에서만 연구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참고 링크:
- Science Advances 논문: Discovery of a multicomponent alloy forged by the Hiroshima atomic blast
- HN 토론 (item?id=49115096)
- The Debrief: The World War II Atomic Blast Over Hiroshima Created a Previously Unidentified Multicomponent Metallic Alloy
- Arkeonews: Scientists Discover Never-Before-Seen Metal Alloy Forged Inside the Hiroshima Atomic Fireball
- CNBC TV18: Hiroshima atomic bomb created unique multicomponent alloy: Stu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