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에 꽃집을 둘러보다 보면 값비싼 파란 장미를 마주치곤 한다. 하지만 줄기를 만져보거나 꽃병 안을 들여다보면 환상은 금세 깨진다. 꽃병 속 물은 옅은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고, 초록 잎사귀 위에도 얼룩덜룩한 파란 자국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파란 장미는 거의 예외 없이 흰 장미의 줄기에 인공 염료를 흡수시켜 만든 것이다. 장미의 유전자 풀에는 푸른 꽃을 피우는 분자생물학적 기반이 결여되어 있어, 지난 수십 년 동안 물리적 염색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일본의 산토리 글로벌 혁신 센터(Suntory Global Innovation Center) 연구진이 교토에서 열린 제32회 국제원예학대회에서 마침내 진정한 유전공학 파란 장미를 공개했다. 이 장미의 꽃잎 색상은 원예학에서 고순도 푸른 꽃을 판정하는 핵심 기준인 색상표상의 바이올렛 블루(청자색)에 도달했다.
밸런타인데이에 팔리던 파란 장미는 잉크를 흡수시킨 것이었다
식물의 세계에서 진정한 파란색 꽃을 피우는 것은 진화적으로 대단히 드문 일이다. 나팔꽃이나 수국은 맑은 하늘색을 뽐내지만, 장미와 백합, 튤립은 태생적으로 푸른빛과 거리가 멀었다.
장미 꽃잎 세포에는 핵심 효소가 없다. 식물이 청색이나 보라색 발색을 결정하는 기본 안토시아닌인 델피니딘(delphinidin)을 스스로 합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화훼 재배자들이 수백 년 동안 수천 번의 교배를 거듭했음에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옅은 보라색 장미에 불과했다.
시장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꽃 농가에서는 수확한 장미 줄기를 파란색 염료 용액에 담가 두었다. 줄기의 물관을 통해 염료가 꽃잎 가장자리까지 이동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위적 염색은 꽃잎의 탈수를 촉진하고 수명을 단축시키며, 특유의 자극적인 화학 약품 냄새를 남기기도 했다.
푸른 색소 유전자 하나만으로는 연보라색 꽃에 그쳤다
문제의 해결책은 언뜻 단순해 보였다. 다른 푸른 꽃에서 색소 유전자를 잘라내 장미 유전체에 붙여 넣는 것이었다. 산토리 연구팀은 이미 1990년에 자연스러운 파란 장미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연구진은 2004년 도라지꽃 계열 식물인 캄파눌라(Campanula medium)의 청색 색소 유전자를 연분홍색 장미에 주입하여 세계 최초의 형질전환 ‘파란 장미’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꽃이 피어났을 때의 색상은 라벤더와 같은 연한 보라색에 머물렀으며, 순수한 파란색과는 거리가 멀었다.
산토리는 2009년 이 연보라색 장미를 ‘어플로즈(APPLAUSE)‘라는 브랜드로 상용화했다. 이 시도는 식물학자들에게 귀중한 교훈을 남겼다. 장미 꽃잎에 단순히 푸른 색소의 원료만을 공급하는 것으로는 진정한 파란색을 구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사진: 일본 교토 온실에서 재배된 청자색 장미의 근접 모습. 출처: Science News
꽃잎에 무색 보조 분자를 더하는 것이 색상 조율의 열쇠
연구팀은 세포 내부의 화학적 미세 환경으로 눈을 돌렸다. 델피니딘을 비롯한 푸른 색소는 산성도가 강한 장미의 액포 안에서 화학적으로 불안정하여, 자연스럽게 붉은 보라색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장미에는 색소 합성 효소뿐 아니라 플라본 C-배당체(flavone C-glycosides)라는 보조 분자를 합성하는 유전자도 없었다. 이 분자는 자체로는 아무런 색을 띠지 않지만, 학술적으로 ‘조색 분자(co-pigment)‘라 불린다. 조색 분자는 일종의 무색 보호막처럼 색소 분자와 단단히 결합하여, 산성 환경에서 색소를 안정시키고 빛의 굴절과 흡수 특성을 변화시킨다.
장미에 무색 보조 분자를 도입했다는 것은 꽃 색깔 개량의 패러다임이 ‘색소 교체’에서 ‘분자 배합 조율’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푸른빛의 깊이와 순도는 색소와 주변 분자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며, 색소만 단독으로 넣어서는 보라색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최신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네 가지 외래 유전자를 동시에 도입했다. 하나는 캄파눌라에서 유래하여 보다 안정적인 청색 안토시아닌인 말비딘(malvidin)을 생산하는 유전자이며, 나머지 세 개는 토레니아(Torenia x hybrida)와 용담(Gentiana triflora)에서 유래하여 조색 분자인 이소오리엔틴(isoorientin)을 합성하는 유전자다.
4개 유전자 조합으로 콜롬비아 노지에서 3년간 안정적인 개화 성공
실험 결과, 꽃잎 세포 내 조색 분자 이소오리엔틴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발색되는 꽃의 색상이 더욱 맑은 푸른빛에 가까워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분자 간 상호작용이 꽃의 최종 발색을 좌우한다는 결정적 증거였다.
이 기술은 실험실 시험관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연구팀은 교토의 온실에서 7년간 식물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계절 변화에 따라 꽃 색상이 퇴색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했다.
상업적 재배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묘목을 세계적인 절화 수출국인 콜롬비아로 옮겼다. 야외 노지 환경에서 3년 연속 재배한 결과, 장미는 안정적인 청자색 꽃을 피워냈으며 우수한 내병성까지 함께 입증했다.
사진: 콜롬비아 야외 시험 재배 현장에서 자라는 장미들. 출처: Science News
단일 유전자 접근법에서 다분자 상호작용의 정밀 설계로
1990년 프로젝트 착수부터 2026년 결과 발표까지, 36년에 걸친 연구 여정은 인류가 식물의 꽃 색상을 바꾸는 연구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36년이란 개발 기간은 한 세대의 화훼 육종가가 청년기에서 은퇴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에 해당한다.
지난 수십 년간 화훼 유전공학은 특정 단일 유전자를 찾아 색소를 치환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연구 책임자인 이토 세이타로(Seitaro Ito)는 이번 연구의 진정한 돌파구가 색소 자체에서 색소와 주변 분자의 상호작용으로 초점을 전환한 데 있다고 설명했다.
장미가 푸른빛을 내기 위해서는 색소와 무색 조색 분자의 정밀한 조합 배합이 필수적이다. 분자 간 상호작용이 정교하게 설계될 수 있다면, 자연계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수많은 색채 조합이 유전자 도구를 통해 현실로 피어나게 될 것이다.
참고 링크:
- Finally, a true blue rose exists — Science News
- Beyond the “World First”: Opening Up New Possibilities for “Blue” in Roses — Suntory Global Innovation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