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나침반 앱을 켜면 바늘은 언제나 변함없이 북쪽을 가리킨다. 우리는 일상에서 거의 체감하지 못하지만, 발밑 지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자기장(전하를 띤 입자를 튕겨내는 보이지 않는 보호막)에 감싸여 있다. 이 자기장 방패는 치명적인 우주 방사선을 막아내고 대기의 안정을 지켜낸다. 그렇다면 태양계 너머 수많은 외계행성(Exoplanet, 태양계 밖 항성을 공전하는 행성)들도 이와 같은 자기장 보호막을 품고 있을까? 천문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이 해답을 찾기 위해 밤하늘을 살펴왔다.
63광년 밖에서 날아온 전파, 외계행성 자기장의 지문을 잡다
2026년 9월 15일, 연구팀은 출판 전 논문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 논문 번호 2609.16720)에 관련 연구를 공개했고, 사이언스 뉴스(Science News)는 9월 22일 이 역사적인 발견을 집중 보도했다. 관측 대상은 지구에서 약 63광년 떨어진 젊은 항성계 화가자리 베타(Beta Pictoris)였다. 63광년이란 빛의 속도로도 63년을 달려가야 하는 거리로, 약 600조 킬로미터에 이른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400만 배가량 늘린 것과 같아 인류가 만든 가장 빠른 우주선으로도 수십만 년이 걸리는 아득한 심우주다.
남아프리카 카루 사막에 자리 잡은 전파망원경 배열 MeerKAT(미르캣, 우주 전파를 수신하는 64대의 고감도 안테나 배열)은 미세한 전파 신호를 포착했다. 연구진은 수신된 전파가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진동하는 원형 편광(Circular Polarization) 특성을 띠고 있음을 발견했다. 전파천문학에서 원형 편광 복사는 고에너지 입자가 강력한 자기장과 상호작용할 때 일어나는 오로라 현상의 독보적인 지문으로 꼽힌다. 인류가 사상 처음으로 태양계 밖 외계행성의 자기장 신호를 직접 검출한 순간이었다.
모항성 노이즈 장벽 돌파, 거대 가스행성 고유 신호 정밀 분리
그동안 외계행성의 전파 신호를 찾으려는 시도는 숱한 실패를 겪었다. 핵심 난제는 행성을 거느린 중심 항성 자체가 방출하는 강력한 전파 잡음이었다. 이는 마치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는 폭풍우 치는 밤에 수 킬로미터 밖에서 반딧불이가 내는 희미한 날갯짓 소리를 포착하려는 것과 같았다. 항성이 쏟아내는 거대한 전파 폭풍 속에서 행성 자체의 미약한 신호를 가려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리건 대학교의 이베트 센데스(Yvette Cendes) 연구원 연구팀은 이 장벽을 뛰어넘었다. 64대의 안테나로 이뤄진 MeerKAT의 뛰어난 공간 분해능과 감도를 통해 항성의 잡음을 정밀하게 제거했다. 그 결과 전파 신호가 외계행성 화가자리 베타 b(Beta Pictoris b)에서 직접 뿜어져 나오고 있음을 확정했다. 센데스 박사는 “중심 항성의 간섭을 확실히 배제했으며, 신호가 이 특정 행성에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베타 픽토리스 b는 목성 질량의 약 10배에 달하는 거대한 가스행성이다. 목성 하나에 지구 1,300개가 들어갈 수 있는데, 이 행성은 지구 약 1만 3,000개를 한데 뭉쳐 놓은 크기다. 태어난 지는 약 2,300만 년에 불과해, 46억 살인 우리 태양과 비교하면 우주에서는 갓 태어난 젖먹이 행성인 셈이다.
그림: 밝은 중심 항성 앞을 지나는 거대 가스행성 베타 픽토리스 b의 상상도. 출처: Science News
지구의 2000배 넘는 자기장, 오로라 방출이 밝힌 극한의 에너지 메커니즘
전파 검출은 자기장의 존재를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이 외계행성이 지닌 가공할 자기장 위력을 드러냈다. 지구 표면의 자기장은 약 0.5가우스(gauss) 수준이며,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이 수십 가우스 정도다. 태양계에서 자기장이 가장 센 맏형 목성의 자기장도 약 4.3가우스에 그친다. 그러나 천문학자들이 전파 주파수를 토대로 계산한 결과, 베타 픽토리스 b의 자기장 세기는 무려 1,000가우스를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센데스 박사는 “태양계의 그 어떤 천체보다 훨씬 강력하고 놀라운 초강력 자기장”이라고 설명했다. 1,000가우스 이상의 세기는 지구 자기장의 2,000배가 넘는 수치다. 우주의 고에너지 전하 입자가 이 거대한 자기장에 붙잡혀 자기력선을 따라 초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전자 사이클로트론 메이저(ECMI) 과정을 통해 강력한 전파를 우주 공간으로 뿜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태양계에서도 오로라라는 아름다운 장관으로 목격된다. 목성과 지구의 양 극지방에서는 하전 입자가 대기 상층부와 충돌하면서 찬란한 오로라 빛을 발산하고 이와 동시에 강한 전파를 내뿜는다. 이번에 포착된 신호는 바로 외계행성의 오로라 전파로, 심우주를 향해 초강력 자기장의 실존을 선언한 셈이다.
그림: 목성 양 극지방을 감싸고 있는 푸른빛 오로라의 근접 관측 모습. 출처: NASA, ESA, and J. Nichols / University of Leicester
동료평가와 8시간 자전 주기 검증, 오로라 맥동 신호 규명 과제
이번 연구 성과는 전 세계 천문학계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이번 관측에 참여하지 않은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천문학자 조 칼링엄(Joe Callingham)은 “이 논문이 동료평가(Peer review)를 무사히 통과한다면 전파천문학이 외계행성 자기장 직접 검출이라는 중대한 문턱을 넘어섰음을 알리는 환상적인 도약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칼링엄 박사는 오로라 기원을 완벽하게 확정 짓기 위한 다음 검증 기준도 제시했다. 바로 전파 신호가 행성의 자전에 맞춰 주기적으로 맥동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베타 픽토리스 b의 자전 주기는 약 8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행성이 자전함에 따라 오로라 발생 구역이 시야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며 8시간마다 규칙적인 펄스를 보인다면 오로라 메커니즘을 최종 입증할 수 있다. 비록 이 검증은 추가 관측 과제로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 확보된 전파 신호의 특징만으로도 오로라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지구형 외계행성 거주 가능성 연구의 전환점, 자기장 방패가 대기를 지킨다
거대 가스행성에서 전파 수신에 성공한 것은 미래 심우주 탐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가스 거인의 자기장 탐지는 관측 기술을 증명하는 시험대다. 다음 궁극적인 목표는 지구를 닮은 암석형 외계행성의 자기장 방패를 포착하는 일이다. 지구에서 불과 4광년 떨어진 프록시마 센타우리 b(Proxima Centauri b)처럼 생명체 거주 가능 구역에 위치한 행성들이 대기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지는 자기장 보호막의 유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상 최초의 외계행성 전파 검출은 인류가 우주 저편 외계행성의 보이지 않는 자기장을 직접 손에 쥔 역사적 순간이다. 오로라 전파는 자기장의 확실한 지문이며, 지구보다 2,000배 이상 강한 자기장 방패의 존재를 증명했다. 63광년의 우주를 건너온 전파는 자기장 방패가 태양계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광활한 우주 곳곳의 수많은 행성 역시 보이지 않는 자기장의 보호를 받으며 존재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참고 링크:
- Science News 보도
- arXiv 프리프린트 논문 (2609.16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