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 오래 둔 과일 접시 주변에서 쌀알보다 작은 초파리 몇 마리가 공중을 맴돈다. 대부분의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저어 쫓아버리곤 한다. 하지만 이 작은 곤충이 실시간으로 고도의 비행 경로를 계산하고 복잡한 구애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이는 드물다. 영국 캠브리지 MRC 분자생물학연구소(LMB)를 비롯한 국제 공동 연구진은 최근 세계적 학술지 『셀(Cell)』에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수컷 노랑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 뇌 속의 1억 2400만 개 신경 연결 전체를 완벽하게 시각화한 지도를 완성한 것이다.
이자벨라 베켓(Dr Isabella Beckett) 박사와 필립 슈레겔(Dr Philipp Schlegel) 박사가 이끈 연구진은 2년 전 완성된 암컷 초파리의 뇌 지도와 이번 수컷 데이터를 결합해 암수 두 뇌 회로를 정밀 비교했다. 과학자들은 유전자가 동물의 행동을 어떻게 물리적으로 형성하는지 최초로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초파리 암수의 뇌 회로는 약 95%가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리고 나머지 5%의 미세한 배선 차이가 구애, 영역 싸움, 날개로 연주하는 사랑의 노래를 정확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초파리 뇌를 66개 초박편으로 절단해 1억 2400만 개 연결점 매핑
곤충의 미세한 뇌 속 신경 회로를 모두 밝혀내는 일은 극한의 기술적 도전이었다. 초파리 뇌는 약 14만 개의 신경세포(뉴런, 신경계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기본 세포)를 지니고 있으며, 이들이 얽혀 1억 2400만 개의 시냅스 연결을 이룬다. 연구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배선을 추적하기 위해 초파리 뇌를 66개의 초박막 단면으로 절단한 뒤 고해상도 전자현미경으로 각 층을 반복 스캔했다.
캠브리지 연구팀은 구글 리서치(Google Research),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HHMI) 자넬리아 연구 캠퍼스, 샴팔리모 재단과 긴밀히 협력했다. 연구진은 수많은 고해상도 이미지를 엮어 3차원 신경망 연결 지도인 ‘커넥톰(Connectome,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뇌 배선도)‘을 구축했다. 이전까지 과학자들은 유전자가 행동을 바꾼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물리적 회로를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감춰져 있던 뇌 회로가 화면 위에 선명히 드러났다.
그림: 1억 2400만 개 신경 연결을 매핑한 수컷 초파리 뇌의 3D 재구성 모델. 출처: MRC / BBC
95% 세포는 공유, 나머지 5% 회로가 싸움과 사랑의 노래를 지배한다
연구진은 2년 전 이미 암컷 초파리의 뇌 배선도를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수컷 커넥톰이 완성되자 두 지도를 겹쳐 정밀 대조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암수 초파리 뇌의 약 95%에 달하는 신경세포와 경로가 서로 정확하게 일치함을 확인했다. 이 공유 회로는 비행, 냄새 탐지, 먹이 탐색, 장애물 회피 등 모든 초파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기본 기능을 관장한다.
그림: 2년 전 매핑이 완료된 암컷 초파리 뇌 배선도. 출처: MRC / BBC
나머지 5%의 특화 배선은 수컷에게서만 관찰되는 세 가지 대표적 행동 패턴과 정확히 맞물려 있었다. 첫 번째는 시각적 추적 회로다. 수컷은 비행 중 암컷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고 쫓아가도록 설계된 특화 시각 뉴런을 보유하고 있다. 두 번째는 공격 행동 회로다. 수컷은 암컷보다 동성 간 결투를 훨씬 자주 벌이며, 공격 행동을 통제하는 신경망의 밀도가 암컷에 비해 현저하게 높았다.
세 번째는 독특한 구애의 노래 회로다. 수컷은 짝짓기 구애 과정에서 한쪽 날개를 고속으로 진동시켜 암컷에게 종 특유의 세레나데를 들려준다. 이 날개 진동 회로는 암컷의 뇌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필립 슈레겔 박사는 “만약 수컷이 노래를 엉망으로 부르면, 암컷은 그 자리를 날아가 버리거나 때로는 수컷의 얼굴을 발로 걷어차기도 한다”고 유쾌하게 설명했다.
유전자는 실제 물리적 케이블을 깔아 행동을 뇌에 각인한다
수십 년 전 유전학자들은 초파리 체내의 두 가지 핵심 조절 유전자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구애 행동이 극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유전학과 뇌과학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유전적 신호가 존재하고 그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은 관찰할 수 있었지만, 유전자가 기관 내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물리적 작용을 하는지는 입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암수 뇌 지도의 정밀 대조가 그 의문을 풀었다. 두 핵심 유전자는 마치 광케이블을 가설하는 작업자처럼 작동하여, 5%에 해당하는 특정 신경세포들의 성장과 네트워크 형성을 직접 지휘하고 있었다. 유전자가 행동을 형성하는 원리는 물리적 배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전자는 뇌 속에 고유한 회로망을 실제로 구축함으로써 자신의 명령을 실행하는 것이다.
인간 남녀 차이 설명 아닌, 뇌 질환 연구를 위한 새로운 망원경
연구팀은 초파리의 뇌 회로 차이를 인간 남녀의 차이로 단순 대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초파리 뇌세포는 14만 개 안팎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뇌는 약 860억 개의 뉴런을 지니고 있으며 환경, 문화, 학습이라는 복잡한 후천적 과정에 의해 행동이 조율되기 때문이다. 이번 뇌 지도의 핵심 가치는 유전자가 뇌의 물리적 배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추적할 수 있는 정밀한 기초 연구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그레고리 제퍼리스(Prof Gregory Jefferis) 교수는 이 신경 지도를 뇌과학의 ‘새로운 망원경’에 비유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조현병 같은 인간의 뇌 질환은 신경세포 연결의 미세한 배선 이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베켓 박사는 초파리 모델에서는 성별이라는 단 하나의 독립변수만을 통제함으로써 뇌 전체의 배선 변화를 관찰할 수 있어, 인간 뇌 질환의 구조적 원인을 이해하는 새로운 창을 열어주었다고 설명했다.
초저전력으로 슈퍼컴퓨터를 압도하다: AI가 초파리 뇌에서 배우는 것
생물학적 성과 외에도, 초파리 커넥톰은 컴퓨터 과학계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대규모 인공지능(AI) 모델을 구동하는 슈퍼컴퓨터는 메가와트급의 막대한 전력을 소모한다. 반면 초파리의 뇌는 1밀리와트도 안 되는 극미한 전력으로 작동한다. 이 극소 에너지로 실시간 시각 추적, 고난도 비행 항법, 복잡한 사회적 판단을 완벽히 해내는 연산 효율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현재 연구진은 AI 연구자들과 손잡고 초파리의 회로 구조를 인공신경망(ANN)에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공학자들은 초파리가 5%의 특화 회로만을 활용해 기본 비행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임무를 효율적으로 전환하는 메커니즘을 모방하고자 한다. 이는 기존 모델보다 훨씬 작고 전력 소비가 적은 차세대 지능형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
초파리 뇌의 95% 공통 회로와 5% 특화 회로 지도는 유전자가 행동을 조종하는 하드웨어적 실체를 명확히 입증했다. 단 5%의 배선 차이가 곤충을 싸우게 만들거나 세레나데를 부르게 한다. 뇌과학의 새로운 망원경이 활짝 열렸다. 이 렌즈가 점점 더 복잡한 뇌 신경망을 향함에 따라, 인류는 뇌 배선이라는 궁극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있다.
참고 링크:
- BBC 보도: 초파리 뇌가 인간 행동의 비밀을 밝히는 방법 (How a fly brain may help explain the secrets of human behaviour)
- 셀(Cell) 학술지 연구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