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침실의 불을 끄고 스마트폰 화면이 꺼지는 순간, 주위는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다. 인간은 빛이 없는 어두운 방 안에서는 몇 걸음조차 제대로 내딛기 어렵다. 그러나 수억 년 동안 햇빛이 단 한 번도 닿지 않은 수천 미터 해저 바닥은 결코 완전히 꺼진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해파리, 오징어, 혹은 빛나는 유인 돌기를 지닌 심해 아귀처럼 특수한 기관을 가진 생물만이 어둠을 밝힐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호주 동부 해안의 깊은 해구 바닥에서 신비로운 푸른빛을 내뿜는 거대한 바다거미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발견은 기존 생물학의 상식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바다거미는 새우, 게, 육상 거미와 같은 절지동물(Arthropod) 문에 속한다. 이들은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별도의 발광 기관을 지니지 않았음에도, 섭취한 먹이의 성분을 이용해 여덟 개의 긴 다리를 맑은 푸른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5000미터 심해에서 끌어올린 2만 5000점의 표본
2017년, 호주 해양연구선 인베스티게이터호(RV Investigator)는 호주 동남부 해안 일대에서 심해 과학 탐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해저 바닥으로 대형 저인망 트롤 그물을 내려 수심 5000미터에 가까운 진흙과 퇴적물 속을 훑었다.
수심 5000미터는 지상에서 에펠탑 12개를 수직으로 쌓아 올린 깊이에 해당한다. 바다에서는 수심 200미터를 넘어서면 햇빛이 완전히 소멸하며, 5000미터 깊이에는 엄청난 수압과 영원한 암흑만이 남는다.
벨기에 루뱅 카톨릭 대학교(UCLouvain)의 해양생물학자 제롬 말레페(Jérôme Mallefet) 박사가 연구선에 올랐다. 그는 선내에 실온 6도를 유지하는 임시 암실을 마련했다. 살을 에는 추위와 암흑 속에서 그는 그물에 걸려 올라온 2만 5000점에 달하는 심해 표본을 하나씩 일일이 검사했다.
수많은 심해 채집물 가운데 두 종류의 거대 바다거미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타스마니아거대바다거미(Colossendeis tasmanica)와 근연종인 Colossendeis minor(C. minor)였다.
그림: 손가락만 한 몸통에 25센티미터에 달하는 긴 다리. 출처: Science News, 촬영: Jérôme Mallefet.
손가락만 한 몸통과 25센티미터 다리가 뿜어내는 푸른빛
타스마니아거대바다거미는 기이한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다. 몸통은 사람의 손가락 크기 정도에 불과하지만, 여덟 개의 긴 다리를 뻗으면 길이가 무려 25센티미터에 달한다.
25센티미터의 다리 길이는 성인의 팔꿈치에서 손바닥 끝까지의 거리에 맞먹는다. 몸통 공간이 극도로 비좁기 때문에 바다거미는 내장 기관과 생식 기관을 모두 속이 빈 긴 다리 내부에 집어넣고 살아간다.
말레페 박사가 어두운 암실에서 바다거미의 다리를 살짝 건드리자, 다리 표면에서 즉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발광 세포를 자극하는 염화칼륨(KCl) 용액을 떨어뜨리자, 여덟 개의 긴 다리는 최대 10분 동안 일정한 세기로 푸른빛을 계속 내뿜었다.
정밀 계측 결과 이 푸른빛의 중심 파장은 449나노미터(nm)로 나타났다. 450나노미터 안팎의 푸른빛은 바닷물 속을 가장 멀리까지 뚫고 나아가는 특성을 지닌다. 빛의 밝기는 다리 끝부분에서 가장 강렬했으며, 몸통 쪽으로 갈수록 점차 옅어졌다.
그림: 발광 바다거미 실험 기록. 출처: Deep Sea Research Part I 논문, Mallefet et al.
자체 발광 기관 없이 말미잘을 먹어 빛을 빌리다
발광 능력을 지닌 대다수 해양 생물은 체내에서 루시페린과 루시페라아제라는 효소를 직접 합성하여 화학 반응을 통해 빛을 만들어내는 생물발광(Bioluminescence) 시스템을 활용한다.
그러나 실험 결과, 바다거미의 조직은 루시페린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대신 이들의 발광 반응은 칼슘 이온이 존재할 때 빛을 내는 ‘칼슘 의존성 광단백질계(Calcium-dependent photoprotein system)‘의 전형적인 특징과 일치했다.
조직 단면 관찰을 통해 구체적인 비밀이 밝혀졌다. 바다거미의 발광 세포들은 다리 내부를 관통하는 장 맹낭(소화관 게실) 주변에 밀집해 있었으며, 소화 조직과 단단히 밀착되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말레페 박사는 바다거미가 진화 과정에서 독자적인 발광선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해저 바닥에 서식하는 발광 말미잘 등의 먹이를 사냥한 뒤, 그 먹이에 들어 있던 발광 물질을 다리 속 소화관에 저장하여 빛을 빌려 쓰고 있었던 것이다.
심해 생물의 76%가 발광: 가장 기초적인 절지동물도 어둠을 밝힌다
지구 생명체의 발광 역사는 매우 유구하여, 해양 생물이 단단한 외골격을 갖추기 시작한 5억 4000만 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 해양 탐사 조사에 따르면 전체 심해 동물의 약 76%가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는 심해 주민 넷 중 셋이 각자의 손전등을 지니고 살아가는 셈이다.
절지동물은 심해 생태계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널리 퍼진 집단으로 꼽혀왔다. 단단한 외골격으로 신체 구조가 고정되어 있어, 과거 학자들은 절지동물이 복잡한 전용 발광 기관을 진화시킬 여지가 거의 없다고 여겼다.
바다거미의 발광이 확인되면서 이러한 학계의 통념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심해에서 생물발광이 차지하는 영역은 교과서에 기록된 것보다 훨씬 광범위했다. 독립된 발광 기관이 없더라도 먹이사슬을 통해 어둠을 밝히는 능력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연구진은 자외선을 비췄을 때 세 종의 바다거미가 초록색 형광(Fluorescence, 흡수한 고에너지 빛을 다른 파장의 빛으로 다시 방출하는 현상)을 낸다는 사실도 함께 발견했다. 이 형광은 짝짓기 신호나 먹이 유인, 혹은 포식자에 대한 경고로 쓰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100년 전의 시적인 탐사 기록을 입증한 실험실 사진
100여 년 전, 초창기 심해 탐사선의 항해 일지에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기록이 적혀 있었다. “그 생물은 등을 대고 누워 있었으며, 모든 다리의 아랫면이 기이한 푸른 광채로 빛나며 마치 바다 밑바닥에 내려앉은 별처럼 반짝였다.”
당시에는 표본 보존 기술과 촬영 장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 기록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문학적인 과장이나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받았다.
말레페 박사가 6도 암실에서 수행한 정밀 실험과 고감도 촬영은 마침내 그 오랜 기록이 확실한 진실이었음을 고해상도 사진과 함께 실증해 냈다.
심해 바다거미의 발광은 심해 생태계에서 빛의 존재가 상상 이상으로 보편적임을 보여준다. 빛을 내는 장치는 소화한 먹이로부터도 얻을 수 있으며, 거미처럼 기초적인 신체 구조를 가진 절지동물조차 먹이의 빛을 빌려 심해의 바닥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참고 링크:
- Science News 보도
- Deep Sea Research Part I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