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해가 없다는 말을 절대적 카오스로 오해하지 마라
소설 《삼체》의 설정과 대중의 통념 속에서 삼체 문제는 늘 절대적 예측 불가능의 대명사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는 100년 넘게 이어진 대표적인 오해다. 1880년대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é)는 삼체 문제에 ‘일반적인 해석해(기초 함수로 표현되는 첫 번째 적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했고, 이 발견은 현대 카오스 이론의 모태가 되었다. 그러나 보편적인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카오스 계 내부에 엄밀한 주기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Three Body Orbits’라는 웹사이트는 13편의 학술 논문에 실린 3,915개의 엄밀한 주기해를 모아 하나의 인터랙티브 도감으로 완성했다. 질량이 같은 세 천체가 정밀하게 계산된 초기 조건에서 서로를 공전하며 한 주기를 돌고 나면, 오차 없이 정확히 원래의 위치와 속도로 되돌아온다. 이론 수학에 일반해 공식이 없다는 것과 공학적 수치 계산에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충분한 컴퓨팅 연산력이 뒷받침된다면, 카오스의 망망대해 속에서도 질서의 고립된 섬을 얼마든지 그려낼 수 있다.
그림: Three Body Orbits 도감 첫 화면의 전체 보기. 각 궤도가 성도처럼 배치되어 있으며 유사한 궤도들이 모여 섬 형태를 이룬다. 출처: Three Body Orbits 웹사이트 캡처
32자리 산술 정밀도의 한계에 도전하며, 브라우저 실시간 시뮬레이션을 배제하다
도감에 수록된 3,915개 궤도의 이면에는 지극히 까다로운 공학적 재구축 과정이 숨어 있다. 제작자는 학술 논문에 실린 초기 조건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넣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논문은 조판상의 제약으로 인해 통상 유효숫자를 10자리에서 15자리 정도만 표기한다. 하지만 삼체 문제와 같은 카오스 계에서는 10⁻¹⁵ 수준의 미세한 절단 오차조차 불과 몇 주기 만에 지수함수적으로 증폭되어 궤도가 급격히 틀어지고 천체가 튕겨 나가게 된다.
각 궤도의 시작과 끝이 매끄럽게 맞물리도록 만들기 위해, 제작자는 고정밀 임의 정밀도 연산 라이브러리와 뉴턴법(뉴턴-랩슨 반복법)을 사용하여 미분방정식의 푸앵카레 단면 사상(Poincaré section map)을 재수렴시켰다. 32자리 십진 고정밀도로 초기 위치와 속도를 반복 보정한 끝에, 궤도 폐합 오차의 중앙값을 1.4×10⁻²⁴라는 경이로운 수치까지 강제로 낮추었다. 이 정밀도 수준에서는 천체가 한 주기를 완전히 회전한 뒤 발생하는 위치 오차가 원자 하나의 직경보다도 훨씬 작다. 수록된 궤도 중 3,889개는 10⁻⁹보다 우수한 폐합 정밀도를 달성했다.
이처럼 극한의 수치 정밀도로 산출된 궤도는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링에 딜레마를 던져주었다. 만약 ‘브라우저 실시간 시뮬레이션’을 선택하여 자바스크립트의 기본 64비트 배정밀도 부동소수점으로 클라이언트에서 실시간 적분을 수행한다면, 닫혀 있어야 할 궤도가 부동소수점 오차 누적으로 인해 수초 만에 어긋나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웹사이트는 ‘사전 계산 스플라인 + 브라우저 재생’ 아키텍처를 선택했다. 서버에서 고정밀 수치적분으로 구한 실제 위치 좌표를 970만 개 이상의 고차 다항식 스플라인 매듭점(knot)으로 압축하여 클라이언트에 전송한다. 프론트엔드는 타임스탬프에 맞춰 이 매듭점들을 보간하고 매끄럽게 렌더링하기만 하면 된다. 사전 계산에 필요한 저장 공간을 런타임의 정확도와 맞바꾸고 무거운 연산을 백엔드로 격리함으로써, 브라우저는 모든 성능을 초당 60프레임의 부드러운 시각 표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 Figure-8 8자형 궤도 화면. 세 천체가 긴 궤적을 그리며 서로를 교차 순환한다. 출처: Three Body Orbits 웹사이트 캡처
세 세대의 학자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도출한 3,915개의 정밀해
3,915개의 정밀 궤도 속에는 지난 수십 년간 비선형 동역학계가 걸어온 학술적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는 단일 연구팀의 결과물이 아니라, 여러 국가의 연구진이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릴레이처럼 이어 붙여 완성한 분류 지도다.
상하이교통대학의 랴오스쥔(Shijun Liao) 연구팀(Li–Liao 그룹)이 전체의 과반인 1,964개 궤도를 찾아내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슈퍼컴퓨터와 자체 개발한 ‘청정 수치 시뮬레이션(Clean Numerical Simulation, CNS)’ 기법을 활용해 수많은 미지의 위상 구조를 체계적으로 탐색해 냈다. 불가리아 소피아 대학교(Sofia) 연구팀은 복잡한 궤도 709개를 제출하여 고차 조화 계열을 크게 넓혔다. 수학계에서 유명한 ‘안무(Choreographies)’ 계열 궤도도 583개나 포함되어 있다. 이 시스템의 천체들은 마치 하나의 줄 위에서 곡예를 펼치듯, 동일한 단일 궤적 곡선을 공유하며 뒤따른다.
그 밖에도 자유낙하 특성을 지닌 특수해 311개(Free-fall), 세르비아 베오그라드(Belgrade) 연구팀(Šuvakov, Dmitrašinović)이 발견한 기하학적 조형미의 230개 해가 포함되었다. 목록에는 로저 브루크(Roger Broucke)가 일찍이 1975년에 유도했던 52개의 고전 궤도도 들어 있다. 여기에 웹사이트 자체 크라우드소싱 연산을 통해 새로 발견된 66개의 궤도까지 더해져 이 방대한 동역학 도감이 완성되었다. 각 좌표의 수치는 슈퍼컴퓨터 클러스터가 수십만 시간 동안 연산 자원을 태워 일궈낸 결과다.
슬라이더를 툭 차서 Floquet 안정성 경계를 시험하다
도감에 수록된 궤도 중 1,593개는 ‘선형 안정(Linearly Stable)‘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전체의 40.7%를 차지한다. 동역학계에서 주기 궤도가 외부 교란에 견딜 수 있는지 판단하는 핵심 지표는 플로케 승수(Floquet multiplier)다. 이는 계에 미세한 섭동이 가해졌을 때 한 주기를 거친 후 오차가 어떻게 전파되는지를 측정한다.
플로케 승수의 절댓값(크기)이 1보다 크면 오차가 지수함수적으로 누적되어 계가 순식간에 붕괴한다. 반면 최대 플로케 승수가 엄밀히 1.000과 같다면 계는 안정성의 경계면에 놓이게 된다. 이 1.000이라는 수치는 섭동이 주기적인 진동만을 유발할 뿐 전체 궤도 위상은 온전히 보존됨을 뜻한다. 승수가 1.000이라는 것은 이 궤도들이 카오스의 바다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확고히 지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학적 증거다.
안정 궤도와 불안정 궤도의 역학적 차이를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는 인터페이스 우측에 ‘Kick(충격)’ 슬라이더를 배치했다. 브라우저에서 특정 천체의 속도 벡터를 임의 방향으로 살짝 건드리면, 프론트엔드의 실시간 수치 적분기가 즉시 작동하며 안전했던 사전 계산 스플라인으로부터 제어권을 넘겨받는다.
Broucke R12와 같은 선형 안정 궤도의 경우 미세한 충격을 가해도 천체가 원래 궤도 근처에서 가볍게 흔들릴 뿐, 계 자체의 복원력으로 균형을 되찾으며 세 천체의 춤을 이어간다. 반면 불안정한 궤도는 슬라이더를 살짝만 건드려도 몇 주기 만에 삼체 계가 와해되며 천체들이 우주 공간으로 무작위로 튕겨 나간다. 이 미니멀한 인터랙티브 디자인은 난해한 미분방정식 고윳값 분석을 손끝에 닿는 생생한 물리적 직관으로 바꾸어 놓았다. 해커뉴스(HN) 토론장에서는 물리학자와 엔지니어들이 허용 가능한 섭동 크기의 한계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매개변수 전수 조사를 탈중앙화 크라우드소싱으로 바꾸다
최근 웹사이트는 브라우저 기반 연산 참여 기능인 ‘Hunt 모드’를 도입했다. 사용자는 브라우저에서 이 모드를 활성화하여 정해진 매개변수 영역 내에서 아직 기록되지 않은 미지의 궤도를 탐색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만약 사용자의 기기가 새로운 선형 안정 주기해를 계산해 내면, 발견자는 그 알고리즘 천체 시스템에 직접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지루한 초기 조건 탐색 작업이 탈중앙화된 긱(geek)들의 크라우드소싱 게임으로 진화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삼체 문제의 불능성을 바꿀 수 없는 종말론적 법칙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이 도감은 알고리즘 연산력이 소수점 아래 24자리 폐합해 검증을 가능케 할 때, 카오스 속에서도 4,000개에 가까운 정밀한 수학적 질서가 존재함을 증명한다. 삼체 문제는 더 이상 철학적 절망의 굴레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데이터와 막강한 컴퓨팅 파워가 채워나가는 활기찬 공학적 실험장으로 변모했다.
참고 링크:
- Three Body Orbits 웹사이트
- Physical Review Letters 110, 114301
- Science China Physics, Mechanics & Astronomy 60, 129511
- Sofia University Research Group Publications
- Celestial Mechanics 12, 439-462
- Hacker News 토론 (item?id=49670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