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4일, 마이크로소프트는 인사이더 베타(Insider Beta) 채널을 통해 겉보기에는 작지만 파장이 막대한 새 기능을 공개했다. 바로 하나의 셀 안에 여러 개의 값을 담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스프레드시트 생태계의 절대적인 철칙이었던 ‘한 셀 한 값’의 원칙이 플랫폼 개발사의 손에 의해 공식적으로 깨졌다.
텍스트 하나에 세 명의 이름을 구겨 넣던 시대의 종말
지난 40년 동안 엑셀로 프로젝트를 관리하거나 업무를 조율해 본 실무자라면 누구나 구조적 한계에서 오는 괴리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하나의 업무에 담당자 세 명, 작업 흐름 네 개, 주요 마일스톤 다섯 개가 얽혀 있을 때, 평면적인 2차원 그리드는 이러한 입체적 계층 구조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현실 세계의 비즈니스 데이터는 본질적으로 다층적인데, 스프레드시트를 평면으로 유지하려는 가정 자체가 타협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결국 실무자들은 “Carlos, Henrietta, Jacob”처럼 쉼표로 연결된 일반 텍스트를 한 셀에 몰아넣거나, 무수히 많은 보조 열을 덧붙이는 편법을 써야만 했다.
이러한 방식의 직접적인 대가는 필터링과 통계 기능의 전면 마비였다. 가령 특정 담당자인 “Jacob”이 포함된 프로젝트만 찾고 싶어도, 기존 자동 필터는 셀 전체의 문자열을 하나의 값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수십, 수백 개의 텍스트 조합이 체크박스 목록에 그대로 노출되어 정상적인 조건 검색이 불가능해진다. 데이터를 평면 텍스트로 압축해 버리는 순간, 2차 분석으로 가는 길은 완전히 막혀 버린다.
이번 업데이트에서는 단축키 Ctrl+J 또는 메뉴의 ‘삽입 > 목록’을 통해 셀 내부의 여러 데이터를 독립적인 비즈니스 항목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긴 문자열 전체를 통째로 필터링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우측 필터 창에서 특정 담당자만 콕 집어 선택할 수 있으면서도, 프로젝트 자체의 소속 정보는 온전히 유지된다. 현실 데이터는 애초에 다중 값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용자로 하여금 이를 단일 값으로 억지로 납작하게 누르도록 강요했던 것은 초기 스프레드시트가 남긴 역사적 부채였다.
그림: 일반 텍스트 결합으로 인한 복잡한 전체 문자열 필터(왼쪽)와 네이티브 다중 값 목록을 통한 개별 항목 필터링(오른쪽). 출처: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공식 블로그
중괄호로 스필을 가두고 단일 셀에 배열을 묶다
다중 값 지원은 단순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목록 추가에 그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엔진 하부 구조에 ‘셀 내 배열(arrays in cells)’ 메커니즘을 함께 선보였다. 엑셀의 역사를 아는 이들이라면 과거 배열 수식을 쓸 때 Ctrl+Shift+Enter라는 번거로운 단축키가 필요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2018년 동적 배열(Dynamic Arrays)이 도입되면서 계산 결과가 주변 셀로 넘쳐흐르는 ‘스필(spill)’ 동작이 가능해졌지만, 이 기능은 강력한 계산 능력을 준 대신 공들여 맞춘 보고서 양식을 무너뜨리거나 기존 데이터를 덮어쓰는 문제를 자주 일으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배열의 넘침 현상을 단단히 가둘 수 있는 방법을 내놓았다. 수식 본문을 중괄호 { }로 감싸기만 하면, 본래 주변으로 넘쳐흘러야 할 모든 계산 결과가 원래의 단일 셀 안에 얌전하게 머문다. 셀 오른쪽에는 전용 확장 아이콘이 표시되어, 세부 내역을 확인하고 싶을 때만 클릭해 열어볼 수 있다. 중간 계산 결과만을 위해 방대한 빈 영역을 비워둘 필요가 없어지면서 시트의 공간 활용 효율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그림: 셀 오른쪽에 새롭게 추가된 확장 아이콘. 다중 값 데이터가 인접 영역으로 무질서하게 넘치지 않는다. 출처: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공식 블로그
여기에 ‘중첩 배열(nested arrays)’ 기능이 더해지면서 데이터는 실제 트리 구조를 고스란히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 가령 웹사이트 론칭 계획에서 디자인, 개발, 테스트라는 세 개의 독립적인 작업 흐름이 각자의 마일스톤 목록을 품은 채 동일한 셀 계층 아래에 안정적으로 공존한다. 입체적인 업무 로직이 그대로 보존되므로, 실무자가 수천 줄짜리 상세 명세표로 데이터를 일일이 평탄화한 뒤 피벗 테이블로 복원해야 했던 소모적인 과정이 사라진다.
집합 함수 생태계가 재편하는 업무 로직
다중 값 셀의 등장에 발맞추어, 새로운 구조를 다루기 위한 집합 연산 전용 함수들도 함께 출시되었다. 셀이 복수의 값을 담게 된 이상, 단순한 등호(=) 비교만으로는 논리를 풀어나갈 수 없다. 이에 따라 프로젝트 추적, 설문조사 분석, 자격 증명 관리 등 복잡한 실무 환경에 특화된 연산 도구들이 대거 추가되었다.
HAS 함수는 특정 담당자나 항목이 셀 안에 존재하는지 즉시 검사하고, HASANY는 경영진 등 특정 그룹의 구성원 중 누구라도 포함된 프로젝트를 한 번에 걸러낸다. HASALL은 최종 승인을 앞두고 필수 이해관계자의 결재가 모두 완료되었는지와 같은 엄격한 충족 조건을 판별한다. 복잡하게 얽힌 중첩 구조를 평평한 단일 목록으로 펴주는 FLATTEN 함수까지 결합되면서, 실무자들은 드디어 사람의 직관에 꼭 맞는 로직으로 수식을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40년 철칙의 붕괴, 외부 도구가 감당해야 할 호환성 대가
이러한 변화는 겉보기에는 엑셀이 현대적인 데이터 도구로 거듭나는 반가운 진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지난 40년 동안 스프레드시트 세계를 지탱해 온 기본 전제를 뒤흔드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비지컬크(VisiCalc)와 로터스 1-2-3 시절부터 전 세계의 데이터 처리 소프트웨어는 ‘한 셀 한 값’이라는 암묵적 약속 위에 세워졌다. 셀 하나를 참조하면 단일한 기본형(primitive) 스칼라 값이 나온다는 확신 아래 수억 개의 금융 모델, 피벗 캐시, VBA 매크로, 데이터 연동 프로그램이 작동해 왔다. 이 40년의 기술적 관성이야말로 기업 데이터 파이프라인의 무결성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자체 생태계 내부에서는 새로운 포맷을 빠르게 지원할 수 있겠지만, 실제 업무 환경에서 엑셀은 데이터 파이프라인의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열을 품은 다중 값 셀이 외부 파일로 내보내져 데이터베이스 적재 도구나 파이썬의 pandas 스크립트로 전달되는 순간, 도구 간 호환성의 경계는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수십 년 전 작성된 파싱 스크립트는 숫자가 문자열이 반환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이제 그 자리에 복잡한 중첩 리스트 객체나 직렬화된 데이터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벡터화 연산은 중단되고, 데이터 타입 추론 엔진은 연쇄적인 오류를 뿜어내게 된다.
기존의 단일 값 데이터 모델을 허물어 당장의 서식 편의와 시각적 깔끔함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심어진 하위 호환성 시한폭탄은 수억 개의 레거시 시트와 수천만 개의 데이터 처리 스크립트 밑바닥에 깊숙이 묻혔다.
한 셀에 다중 값을 허용한 것은 복잡한 비즈니스 현실에 맞추어 스프레드시트가 내놓은 뒤늦은 타협안이다. 현실 세계의 데이터는 결코 단정한 2차원 표 안에 갇힐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한 셈이다. 단일 값 족쇄를 푼 덕분에 불필요한 행과 열이 줄어들고 수식 작성은 직관을 되찾았다. 그러나 입체적인 계층 구조를 기초적인 셀 단위에 무리하게 집어넣은 결과, 현대 비즈니스를 떠받치는 전체 데이터 파이프라인의 취약성은 몇 배로 치솟게 되었다.
참고 링크:
-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공식 블로그
- 마이크로소프트 365 인사이더 블로그
- 해커뉴스 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