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된 지뢰찾기가 AAA 대작이 되었을 때: 껍데기만 남은 게임 산업의 허상

31년 된 지뢰찾기가 AAA 대작이 되었을 때: 껍데기만 남은 게임 산업의 허상

게임 산업AAA지뢰찾기

데이터 소스:web research

웹 브라우저 화면에 익숙한 Windows 95 스타일의 바탕화면이 나타난다. 사용자는 먼저 ‘Triple-A Minesweeper’라는 이름이 붙은 아이콘을 더블클릭해야 한다. 묵직하게 울리는 중저음과 함께 칠흑 같은 암전 속에서 익숙한 로고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Nvidia, Unreal Engine, 그리고 오디오 미들웨어인 Wwise가 줄지어 등장한다.

이것은 대형 게임사의 신작이 아니다. 프로그래머이자 작가인 마이크 래커(Mike Lacher)가 고전 지뢰찾기 게임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외피에 집어넣은 패러디 프로젝트다. 지뢰찾기는 본래 1990년 Windows 3.1 엔터테인먼트 팩의 일부로 처음 세상에 나왔지만, 대다수 이용자가 처음 접한 것은 1995년 출시된 Windows 95 버전이었으며 1995년을 기준으로 이미 3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요란하고 거대한 산업적 포장과 격자 타일을 누르며 지뢰를 찾는 소박한 원초적 플레이 사이의 간극이 기묘한 부조리감을 자아낸다.

고전 퍼즐에 덧씌운 블록버스터의 외피

래커는 이 웹 기반 지뢰찾기에 수천억 원대 대작의 위용을 입히기 위해 치밀한 제작 구성을 갖췄다. Unreal Engine과 Wwise의 오프닝 로고뿐만 아니라, 게임 코드 속에는 컷신용 자막 파일(subtitles.js), 인트로 연출(intro.js), 엔딩 스크롤(ending.js) 스크립트까지 충실하게 포함되어 있다.

Triple-A Minesweeper 바탕화면 그림: 게임 실행 전 Windows 95 스타일 바탕화면. 중앙에 Triple-A Minesweeper 바로가기 아이콘이 배치되어 있다. 출처: Triple-A Minesweeper 웹사이트 캡처

대작 게임에서 흔히 보던 미들웨어 로고들은 여기에서 무료 스티커처럼 쓰인다. 본래 이 로고들은 천문학적인 자본 투입의 증거였다. 언리얼 엔진은 최상급 그래픽 사양을 뜻하고, Wwise는 복합적인 사운드 설계를 상징하며, Bink Video는 대작 게임 영상 컷신의 표준 부품이었다. 바탕화면에는 예술가적 자의식을 뽐내듯 ‘A game by Mike Lacher’라는 서명까지 버젓이 박혀 있다. 이러한 화려한 스펙 표가 전면에 배치되자마자, 가벼운 미니게임은 순식간에 제작비 수억 달러가 투입된 대작이라는 착시를 일으킨다.

아이콘 더블클릭조차 ‘도전 과제 해금’이 되는 시대

해커 뉴스(Hacker News) 댓글란에서는 한 이용자가 게임을 켜는 법을 찾느라 한 시간이나 헤맸다고 털어놓았다. 브라우저를 바꿔보고, 프록시를 켜고, uBlock Origin 광고 차단기를 꺼보아도 소용없었는데, 알고 보니 바탕화면 아이콘을 더블클릭해야 실행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에 다른 이용자가 게임 문법을 빌려 유쾌하게 받아쳤다. “혹시 ‘도전 과제 달성: 게임 최초 실행’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아래에는 플랫폼 시스템 알림을 흉내 낸 댓글이 이어졌다. “전체 플레이어의 7.89%만이 이 과제를 달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1995년 당시의 지극히 당연한 조작 방식을 현대 유저를 가로막는 진입 장벽으로 탈바꿈시켰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 플레이어들이 이 딱딱하고 투박한 인터랙션을 마주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최신 게임의 도전 과제 문법으로 합리화했다는 사실이다. 거대한 산업적 문법에 길들여진 게이머들만이 사소한 불편함조차 게임이 준비한 보상 시스템으로 해석한다.

도전 과제 팝업이 조건반사로 자리 잡은 시대에는 바탕화면 아이콘을 더블클릭하는 고풍스러운 조작마저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재해석된다. 유저들은 이미 모든 장벽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현대적 게임 디자인 논리에 완벽하게 길들여져 있다.

개발 예산이라는 이름의 면죄부

이 농담이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폭발적인 공감을 얻은 까닭은, 게이머들이 오랫동안 참아왔던 게임 업계의 피로감을 정면으로 찔렀기 때문이다. 오늘날 AAA 게임의 산업적 포장은 본질적인 재미와 완전히 분리되었다. 화려한 셰이더, 웅장한 사운드트랙, 촘촘한 도전 과제 시스템은 애초에 개발사가 쏟아부은 막대한 자본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였으나, 이제는 어떤 부실한 알맹이에도 씌울 수 있는 속 빈 껍데기로 전락했다.

이런 고급 인증 마크들이 번듯하게 늘어서 있으면 플레이어는 저절로 기대를 품게 된다. 게임의 핵심 구조에 아무런 새로움이 없더라도, 대중은 그 겉포장에 걸맞은 가치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길거리 간식에 미슐랭 레스토랑의 은쟁반을 받쳐 내놓는 꼴이다. 쟁반의 값비싼 가격이 음식의 초라한 맛을 가려버린다.

포장이 곧 품질의 대명사가 되고 막대한 개발비가 면죄부로 통하는 관행은 이미 코미디에 가깝다. 가장 값비싼 껍데기로 가장 원초적인 게임 방식을 둘러쌈으로써, 대형 게임사들이 자랑해 온 산업 표준의 공허함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Triple-A Minesweeper 공식 이미지 그림: Windows 95 바탕화면에 놓인 Triple-A Minesweeper 바로가기 아이콘. 출처: Triple-A Minesweeper 공식 공유 이미지

유저들의 집단 풍자로 완성된 블랙코미디

래커는 소셜 미디어에서 한술 더 떴다. 내년 1분기에 전리품 상자(랜덤 뽑기)와 유명 브랜드 콜라보레이션을 도입하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이다. 이용자들은 즉각 이 상황극에 동참하여 댓글 창에서 패러디를 확장해 나갔다. 어떤 이는 도전 과제가 너무 적다며 “지뢰 10개 해체하기” 같은 서브 퀘스트를 넣어야 한다고 진지하게 건의했다.

어떤 이는 튜토리얼이 부족하다며 노란색 다이아몬드로 이끄는 유도 페인트와 발광 냄새 궤적을 추가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 유저는 70달러를 들여 할리우드 배우 잭 퀘이드(Jack Quaid)를 섭외해 지뢰의 모션 캡처를 따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언리얼 엔진을 썼으면서 왜 지루한 로딩 바와 출렁이는 가변 해상도가 없느냐는 날카로운 지적도 나왔다. 겉보기엔 황당해 보이는 이 모든 제안은 오늘날 풀프라이스 대작 게임들이 실제로 앓고 있는 고질병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해커 뉴스에서는 하드웨어 스타트업 옥사이드(Oxide)의 9시간짜리 면접 절차와,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에 인수된 디노(Deno)의 존립 문제를 두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무엇이 진정한 제품의 가치인지 묻고 있던 그 순간, 지뢰찾기는 가장 경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막대한 예산을 품질과 동일시하는 개발 논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농담이었으며, 이용자들은 그 논리를 그대로 흉내 내며 유쾌한 집단 조롱을 완성했다.

참고 링크:

  • GameSpot 보도
  • AV Club 보도
  • Mike Lacher 소셜 미디어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