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국물을 식히는 일상의 동작, 400킬로미터 상공의 우주로 가다
뜨거운 국 한 사발을 앞에 두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국물 표면을 입으로 분다. 가장 빠르고 에너지가 높은 열 분자가 바람에 실려 날아가면서 그릇 속 평균 온도가 서서히 내려간다. 이러한 일상의 현상을 물리학에서는 증발 냉각이라고 부른다.
가정용 냉동실의 온도는 보통 영하 18도 안팎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남극 내륙에서 관측된 최저 기온도 영하 89도에 그친다. 그런데 2026년 11월 5일, 중국 과학자들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실었다. 고도 400킬로미터 궤도에 정밀 냉각 장비를 쏘아 올려 우주정거장 톈궁 내부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차가운 물질을 만들어낸 것이다.
자동화된 실험 장치는 원자들을 9.7피코켈빈까지 냉각시켰다. 1피코켈빈(picokelvin)은 1켈빈의 1조분의 1에 불과한 극미의 온도 단위다. 물리학에는 열역학적 최저 한계인 절대영도(섭씨 영하 273.15도)가 존재하는데, 이곳에서는 입자의 열운동이 거의 완전히 멈춘다. 톈궁에서 만들어낸 원자 기체는 이 절대영도에서 단 10조분의 1도 떨어진 지점에 도달했다.
중력이 부서뜨리는 연약한 원자 구름: 우주에서 해법을 찾다
과학자들은 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밀 냉각 장치를 우주로 올려 보냈을까. 그 이유는 지구 어디에나 존재하는 중력에 있다. 미시 세계의 온도는 원자가 얼마나 격렬하게 움직이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물의 온도가 높을수록 분자는 빠르게 움직이며, 온도를 낮추는 것은 원자의 움직임을 늦추는 과정이다.
진공 속에서 원자를 가두고 냉각하기 위해 연구진은 레이저로 보이지 않는 역장을 쌓는다. 물리학에서는 원자를 가두는 이 구조를 퍼텐셜 우물(potential well)이라고 부르며, 매끄러운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한다. 온도가 100억분의 1도 아래로 떨어지면 원자 구름이 자연스럽게 팽창할 수 있도록 이 그릇을 극도로 평평하고 얕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표면에서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힌다. 지구의 중력이 미시 입자들을 쉼 없이 아래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외부 역장 그릇이 얕아지는 순간 원자 구름은 자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릇 바닥으로 쏟아져 내린다. 독일 브레멘 연구진이 146미터 높이의 낙하탑을 세워 자유낙하를 통해 짧은 무중력 환경을 구현하기도 했으나, 관측 가능한 시간은 약 2초에 불과했다.
극저온 원자를 오랫동안 공중에 띄워두려면 지상의 중력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톈궁의 멍톈 실험 모듈은 미세중력(microgravity) 환경에서 궤도를 돈다. 아래로 끌어당기는 중력의 압박이 사라지면서, 쉽게 흩어지던 연약한 원자 구름이 공중에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진: 궤도를 순항하는 톈궁 우주정거장. 출처: CMSA / SCMP
레이저로 낮춘 얕은 그릇: 달팽이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2만 개의 원자
톈궁에는 냉각 원자 물리 실험 장치(Cold Atom Physics Rack, CAPR)가 탑재되어 있다. 연구진은 진공 챔버 안에서 교차하는 레이저의 전자기력으로 원자를 붙잡는 광학 쌍극자 트랩(optical dipole trap)을 활용해 루비듐-87 원자 약 200만 개를 포획했다. 루비듐-87은 연성이 뛰어나고 레이저 제어가 수월한 알칼리 금속 동위원소다.
실험팀은 먼저 5와트 출력의 레이저를 켜서 54마이크로미터 너비의 좁은 공간에 원자들을 가두었다. 그런 다음 제어 시스템을 이용해 레이저 출력을 0.2밀리와트까지 서서히 낮췄다. 뜨거운 국물에 입바람을 불어넣듯 에너지가 높은 원자들이 얕아진 그릇 밖으로 빠져나갔고, 남은 원자들의 온도는 3.1나노켈빈까지 떨어졌다. 이 원자들은 거시적 양자 상태인 보스-아인슈타인 응축(BEC) 상태로 전환되었다.
이어서 연구진은 이 원자 구름을 124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바깥쪽 광학 트랩으로 풀어놓았다. 중력의 방해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 원자 구름은 자유롭게 퍼져나갔다. 원자들 사이의 충돌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온도는 마침내 9.7피코켈빈까지 내려갔다. 이는 독일 낙하탑이 기록했던 38피코켈빈을 4배 가까이 앞당긴 수치이며, 2020년 미국 국제우주정거장(ISS) 실험실이 세운 52피코켈빈 기록 역시 가볍게 넘어선 결과다.
심우주에 남아 있는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 온도는 약 2.7켈빈이다. 우주정거장이 만든 이 원자 구름은 심우주의 자연 배경보다 2000억 배 이상 차갑다. 9.7피코켈빈 상태에서 2만 개의 루비듐 원자가 팽창하는 속도는 초당 200마이크로미터 미만이었다. 정원의 달팽이가 1센티미터를 기어가는 데 약 50초가 걸리므로 초당 200마이크로미터를 이동하는 셈이다. 극저온 원자 구름의 이동 속도가 달팽이와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이 원자가 사람 머리카락 한 올 너비를 지나가는 데만 30초 넘게 걸린다.
그림: 우주정거장 실험 장치 내부에서 레이저 광학 트랩으로 극저온 원자를 포획하는 개념도. 출처: Xiaoji Zhou / Peking University (DongA Science)
7초의 자유 팽창: 온도 기록보다 값진 관측 시간
많은 양자물리학자들은 최저 온도 경신보다 더 중요한 성과로 원자 구름이 우주 공간에서 무려 7초 동안 자유 팽창을 유지한 점을 꼽는다. 연구진은 이 7초 동안 원자 구름의 상태를 연속 추적하며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지상의 낙하탑은 건축물 높이의 한계로 인해 약 2초의 관측 시간만 확보할 수 있다. 앞서 ISS에서 진행된 유사한 실험에서도 관측 시간은 약 1초에 그쳤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물리학자 홀거 뮐러 교수는 7초라는 유지 시간이 10피코켈빈이라는 온도 수치보다 훨씬 강력한 지표라고 평가했다. 지상에서도 훗날 극저온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낙하 상태의 원자를 7초 동안 공중에 띄워두는 것은 지구상에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관측 시간이 7초로 늘어났다는 것은 장시간 노출이 가능한 초고속 카메라를 손에 쥔 것과 같다. 미시 원자가 느리게 움직이고 허공에 오래 머무를수록 주변 환경의 간섭을 제거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정밀 측정의 해상도는 관측 시간에 비례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기존 세계 기록 보유자였던 독일 물리학자 에른스트 라셀도 진심 어린 축하를 전했다. 중국과학원 상하이광학정밀기계연구소의 천웨이뱌오 연구원은 톈궁의 냉각 원자 물리 실험 장치를 전 세계 연구진에게 개방하여 국제 공동 연구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중력의 압박을 벗어나 정밀 측정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다
우주에서 극저온을 구현하고 입자를 장시간 띄워두는 궁극적인 목표는 기초 물리학 연구에 있다. 그중 가장 앞선 목표는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 검증이다. 중력장 안에서 질량이 서로 다른 물체라도 동일한 가속도로 자유낙하한다는 기본 가설이다.
연구진은 앞으로 서로 다른 두 원소의 냉각 원자 구름을 우주에서 동시에 방출하는 후속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7초에 달하는 체공 시간은 미시 입자의 낙하 가속도 비교 정밀도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또한 극저온 원자 구름은 초고감도 양자 중력계로 활용되어 지구 궤도에서 미세한 중력 변화를 감지하고 지하수의 흐름이나 극지방 빙하의 변화를 관측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지표면에서는 지구 중력이 연약한 냉각 원자 구름을 짓눌러 실험에 한계가 있었다. 중국 우주정거장은 미세중력 환경을 활용해 2만 개의 루비듐 원자를 9.7피코켈빈까지 냉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전 기록을 최소 4배 이상 앞당겼으며, 7초에 이르는 자유 부유 시간은 인류가 미시 양자 세계와 거시 중력 법칙을 측정하는 가장 예리한 잣대를 마련해주었다.
참고 자료:
- Science 논문: Quantum gases below 10 picokelvin in space
- Science News 보도: China space station cold atom experiment creates record low temperature
- SCMP 보도: Chinese scientists chill atoms to record low on Tiangong space station
- DongA Science 보도: Chinese scientists break record for coldest temperature in 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