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불을 끄고 누웠을 때 귓가에서 날파리의 가느다란 날갯짓 소리가 들리면, 누구나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귀를 틀어막게 된다. 많은 사람이 샤워 후 면봉을 귓속으로 넣어 누런 분비물을 닦아내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일상적인 위생 관념 속에서 이 미끈거리는 물질은 반드시 파내야 할 묵은 때로 취급받곤 한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이 현미경 아래에서 들여다본 모습은 전혀 달랐다. 2026년 10월 28일 영국 왕립화학회 학술지 Soft Matter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 생체공학 연구팀은 이 분비물의 물리적 특성을 처음으로 정밀 측정했다. 귀찮고 불결하게 여겨졌던 기름진 혼합물이 실은 인체 통로 입구에 배치된 무독성 물리적 방충 코팅제였던 것이다.
36개의 귀지 표본 수집: 현미경으로 포착한 물리적 증거
귓속 깊은 곳은 따뜻하고 바람이 들지 않으며 연약한 고막으로 곧장 이어져 있어, 곤충의 시선에서는 이상적인 은신처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벌레가 귓속으로 파고들거나 보금자리를 트는 사례는 지극히 드물다. 조지아 공대의 생체공학 연구자 데이비드 후(David Hu) 교수와 박사과정 연구원 데이비드 안칼레(David Ancalle)는 역학적 관점에서 그 해답을 찾기로 했다.
연구의 첫 번째 난관은 실험용 표본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의학적으로 이구(cerumen, 귓속 피지선과 이구선에서 분비되는 왁스질 지질과 탈락된 피부 세포의 혼합물)라 불리는 귀지는 사람이 한쪽 귀에서 분비하는 양이 평균 쌀 한 톨 크기인 10~20밀리그램에 불과하다. 물성 측정에 필요한 양을 모으기 위해 안칼레는 주변 동료와 지인들을 설득하는 한편, 동물병원에서 돼지, 양, 개, 소, 토끼의 귓속 분비물을 모아 총 36개의 표본을 확보했다.
그림: 고배율로 확대한 양의 귀지 표면. 겹쳐진 피부 각질 세포가 매끄럽지 않은 표면을 형성하며, 미세 균열은 수분을 빨아들이는 기공 역할을 한다. 출처: The Conversation (David Ancalle / David Hu)
전자현미경이 포착한 내부 구조는 매우 독특했다. 귀지의 약 60%는 떨어져 나온 각질 세포(죽은 피부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질이 접착제 역할을 하여 이 미세 입자들을 단단히 묶어주고 있었다. 이러한 배열은 스펀지와 유사한 다공성 그물망 구조를 형성하며 표면에 얽히고설킨 미세 균열을 만들어냈다. 중세 시대 필경사들이 채색 필사본 삽화를 그릴 때 안료에 귀지를 섞어 천연 점착제로 활용했던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자연은 각질 세포와 기름진 지질을 결합해 고체의 지지력과 유체의 점성 저항력을 동시에 갖춘 천연 신소재를 빚어낸 셈이다.
모세관 작용으로 체액 흡수: 몸무게 60배를 버티는 개미 빨판이 그대로 미끄러진다
벌레가 귀지를 맞닥뜨렸을 때 나타나는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실험 장치에 개미를 투입했다. 곤충은 3차원 공간을 오를 때 두 가지 운동 메커니즘을 번갈아 활용한다. 거친 바위나 나무껍질을 탈 때는 발끝의 날카로운 발톱을 틈새에 걸고, 매끄러운 유리나 잎사귀 표면에서는 발끝의 습식 부착판(아롤리움, arolium)에서 미량의 액체를 분비해 모세관 장력으로 흡착한다.
개미는 이 부착판이 만들어내는 모세관 흡인력 덕분에 매끄러운 수직 유리면에서도 자기 몸무게의 60배가 넘는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이를 사람 크기로 환산하면, 성인 남성이 빌딩 유리 외벽에 두 손바닥만 대고 매달린 채 발아래 화물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을 매달고 버티는 것과 같다. 일반적인 매끄러운 표면은 개미의 전진을 가로막지 못한다.
연구진은 깨끗한 유리 슬라이드 위에 귀지를 종이 한 장 두께로 얇게 바른 뒤 개미를 올려놓았다. 고속 카메라에 포착된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개미의 앞발이 코팅면에 닿는 순간, 접지력을 발휘하던 습식 빨판이 즉시 헛돌며 기름 칠한 얼음판 위에 올라선 것처럼 그 자리에서 미끄러져 굴러떨어졌다.
귀지 내부의 다공성 구조는 자체 무게의 2배에 달하는 액체를 흡수하는 강력한 모세관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개미 발바닥이 액체 다리를 놓아 흡착력을 만들려는 찰나, 귀지 표면의 미세 기공이 그 액체를 순식간에 빨아들인다. 액체 지지층이 끊어지면서 개미가 자랑하던 진공 빨판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전단 감점성의 함정: 버둥거릴수록 온몸에 엉겨 붙는다
평평한 유리판 실험이 흡착판의 무력화를 증명했다면, 귓구멍은 좁고 굽은 터널 형태다. 연구팀은 곤충이 좁은 통로로 기어드는 환경을 모사하기 위해 포유류의 귓구멍 직경과 동일한 투명 소형 터널을 제작하고 내벽에 귀지를 얇게 도포했다.
터널 내부로 진입한 곤충은 귀지의 또 다른 역학적 특성인 전단 감점성(shear-thinning)과 마주친다. 이는 외력을 받으면 묽어지고 정지 상태에서는 다시 끈적해지는 비뉴턴 유체의 특성으로, 케첩 병을 흔들면 묽어져 쉽게 흘러나오는 현상과 같다. 개미가 전진하기 위해 발을 디디며 힘을 가하면 접촉 부위의 귀지가 묽어져 푹 꺼지면서 다리 관절을 감싸 안는다.
그림: 개미 몸에 엉겨 붙은 귀지 파편(노란색 원 표시). 개미는 이동을 멈추고 필사적으로 몸을 털어내야 한다. 출처: The Conversation (David Ancalle / David Hu)
개미가 발을 빼내어 다음 발을 내딛으려 힘을 빼는 순간, 외력이 사라진 귀지는 수 밀리초 만에 다시 높은 점도의 끈끈한 상태로 돌아와 다리 마디를 단단히 붙잡아둔다. 개미가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귀지는 관절의 움직임을 따라 더듬이, 겹눈, 가슴과 배의 연결 부위까지 번져나간다.
고속 영상 속 갇힌 개미들은 불과 수 초 만에 전진을 포기하고 필사적으로 자기 몸을 털어내는 몸단장에 돌입했다.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앞발로 더듬이와 몸통을 긁어내며 이물질을 떼어내려 애썼지만, 수분이 흐른 뒤에도 노란 미세 입자들은 외골격 틈새에 끈질기게 박혀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형 자가 정화: 10주 주기의 상피 이동이 유지하는 초박막
이러한 물리적 덫의 위력을 보면 귀지가 두껍게 쌓일수록 안전할 것이라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역학 실험 결과는 정반대였다. 가장 얇게 도포된 막일 때 방충 효과가 가장 뛰어났다. 귀지가 오랫동안 쌓여 딱딱하게 굳어지면 표면에 요철과 균열이 생겨, 개미가 날카로운 발톱을 그 틈에 걸고 굳은 덩어리 위를 가뿐하게 걸어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체 귓구멍에는 이 두께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자동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바로 상피 이동(epithelial migration)이다. 고막 중심부에서 시작된 피부 조직이 바깥쪽을 향해 서서히 밀려 나오는 자가 청소 컨베이어 기전으로, 손톱이 자라는 속도와 비슷한 8~10주 주기로 완전히 교체된다.
여기에 일상적인 대화와 음식 씹기 등으로 인한 턱관절의 미세한 움직임이 귓구멍 바깥쪽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준다. 오래된 각질 파편은 잘게 부서져 귓구멍 밖으로 배출되고, 새로 분비된 기름진 성분이 벽면에 고르게 펴지며 곤충이 발을 붙일 수 없는 가장 이상적인 초박막 두께를 유지한다.
사람의 귀지는 유전적 요인에 의해 단일 유전자 변이로 건성과 습성으로 나뉜다. 동아시아인은 대체로 건조한 부스러기 형태를 띠고 유럽이나 아프리카 계통은 축축한 연고 형태를 보이지만, 둘 다 다공성 미세 방어선으로서의 물리적 차단 성능은 동일하다. 미국에서만 매년 이구 전색(귀지가 과도하게 쌓여 귓구멍을 막는 증상)으로 진료받는 인원이 1,200만 명에 달한다.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면봉 사용을 강하게 만류하는 이유도, 면봉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야 할 각질을 깊은 곳으로 밀어 넣어 딱딱한 덩어리로 뭉치게 만들고, 결국 천연 보호막을 파괴해 곤충에게 발판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살충제를 대체하는 물리적 방어: 곡물 저장 창고로 향하는 생체 모방 기술
조지아 공대 연구진의 이번 발견은 화학 약품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해충 방제 가능성을 열어준다. 오랫동안 가정 내 방충과 농업 저장 창고는 신경독성 살충제나 독한 휘발성 물질에 의존해 왔으며, 이는 해충의 내성을 유발하고 인체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었다.
연구팀은 귀지의 다공성 지질 구조를 모방하여 식용 식물성 기름과 무해한 미세 분말을 배합한 인공 귀지 대체재를 개발했다. 통제된 저장 창고 실험에서 기어 다니는 해충들은 인공 코팅 위에서 접지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곡물 사일로 바닥에 둘러진 격리 띠를 전혀 넘지 못했다.
독일 킬 대학교의 기능형태학자 스타니슬라프 고르브(Stanislav Gorb) 교수는 이 흔한 생체 분비물이 미세 기계적 방어의 정교한 본보기를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물리적 차단 방식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화학적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곡물 운송과 보관, 유기농 농산물 포장재 방충, 정밀 전자 기기 클린룸의 물리적 밀폐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커다란 잠재력을 지닌다.
귓구멍 입구에 묻어나는 작은 분비물은 수백만 년의 포유류 진화가 빚어낸 순수한 물리적 덫이다. 미세 기공의 수분 흡수가 빨판을 미끄러뜨리고, 전단 감점성이 발 관절을 붙잡으며, 상피 이동이 얇은 방어막을 끊임없이 유지한다. 다음에 면봉을 집어 들기 전 귀 청소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이 천연 보호막이 제 두께를 지키도록 두는 것이야말로, 귀 건강을 지키는 가장 지혜로운 전략이다.
참고 링크:
- Soft Matter 연구 논문
- Science News 보도 기사
- The Conversation 대중 과학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