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새도 낚아채는 가느다란 실: 화학 공장이 흉내 내지 못한 천연의 신비
이른 아침 숲길을 걷다 보면 거미줄에 걸려본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눈에 거의 띄지 않을 만큼 가늘지만 걷어내려 하면 놀라운 탄성을 보인다. 천연 거미줄의 굵기는 수 마이크로미터로 인간 머리카락의 약 20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실 한 가닥이 낙하하는 거미의 몸무게와 충격을 허공에서 단숨에 지탱해낸다.
역학적 특성에서 천연 거미줄은 인류 현대 산업의 최고 기술을 훌쩍 뛰어넘는다. 같은 굵기의 특수강보다 인장 강도가 우수하며, 방탄복이나 고급 펑크 방지 타이어에 쓰이는 고강도 합성 섬유 케블라(Kevlar)보다 충격 흡수 인성이 뛰어나다.
더욱 놀라운 점은 거미 한 마리가 용도에 맞춰 일곱 가지나 되는 서로 다른 성질의 실을 뽑아낸다는 사실이다. 먹이를 감싸는 실은 매우 부드럽고, 거미줄 바깥쪽을 두르는 실은 충격 흡수에 특화되어 있다. 거미가 공중에서 추락할 때 생명줄 역할을 하는 것은 견인사(드래그라인 실크, dragline silk)다. 이 주 섬유는 자연계에서 충격 흡수 능력이 가장 뛰어난 물질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 숲속에서 거미줄을 치고 있는 왕거미. 그 실은 높은 강도와 뛰어난 탄성을 겸비하고 있다. 출처: Quanta Magazine (Konrad Wothe/NaturePL 촬영).
수십 년 동안 재료과학자들은 공장에서 거미줄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해왔다. 가볍고 질긴 인공 거미줄을 상용화할 수 있다면 초경량 방탄복이나 고강도 안전벨트를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합성한 섬유는 천연 거미줄의 성능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인류가 거미줄을 완벽히 복제하지 못했던 가장 큰 원인은 거미의 복부 분비선 내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물리화학적 상전이 과정을 직접 관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미의 뱃속 실샘에는 스피드로인(spidroin)이라 불리는 대형 단백질 원료가 대량으로 저장되어 있다. 분비선 깊은 곳에서는 이 단백질들이 물과 미량의 염분에 안정적으로 용해되어 날달걀 흰자와 같은 묽은 점성을 유지한다. 그런데 몸 밖으로 분출되는 순간, 이 미끄러운 액체는 순식간에 단단하고 질긴 고체 섬유로 굳어진다. 제멋대로 엉켜 있는 면발 같은 분자 사슬이 어떤 신호를 받아 한순간에 단단한 밧줄로 결합하는 것일까? 과학계는 이 상전이의 수수께끼를 두고 오랫동안 해답을 찾지 못했다.
두 겹의 장갑과 마취: 2주 동안 여섯 번 마취된 검은과부거미
액체 단백질이 고체 섬유로 응축되는 과정을 규명하기 위해,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의 화학자 그레고리 홀랜드(Gregory Holland) 교수 연구팀은 서부검은과부거미를 실험 대상으로 선정했다.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연구실은 살아있는 성체 암컷 검은과부거미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았다. 암컷 검은과부거미는 몸집이 크고 방사하는 견인사의 인성이 매우 뛰어나 실험 표본으로 최적이었다.
실험실에서 거미줄을 채취하는 일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위험한 작업이다. 연구원들은 먼저 밀폐 용기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거미를 깊은 수면 상태에 빠뜨린다. 그런 다음 두 겹의 두꺼운 보호 장갑을 낀 채 핀셋으로 거미 복부의 방사 돌기에서 투명한 극세 섬유를 조심스럽게 집어 올린다. 뽑아낸 섬유 끝을 회전하는 병에 고정한 뒤, 초소형 모터를 일정한 속도로 회전시켜 실을 감아낸다.
사진: 실험실에서 실크 추출 실험에 사용된 암컷 검은과부거미. 출처: Quanta Magazine (Phil Degginger/Alamy 촬영).
이 검은과부거미들은 2주 동안 총 여섯 차례 마취를 겪었으며, 한 번 채취할 때마다 작업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추출한 단백질을 정밀 분석 기기에서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연구팀은 특별한 먹이를 준비했다. 탄소 13과 질소 15 같은 안정 동위원소가 풍부한 아미노산을 영양 셰이크 형태로 만들어 거미에게 주기적으로 먹인 것이다. 이 표지 물질들은 체내에 흡수되어 동위원소 꼬리표가 달린 새로운 스피드로인 분자로 합성되었다.
홀랜드 교수는 실을 많이 뽑아주고 성격이 온순한 거미가 연구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지만, 마취에서 깨어난 뒤 사납게 공격성을 드러내는 거미들에게도 내심 경의를 표했다고 회상했다. 끈기 있는 반복 채취 과정을 통해 연구팀은 고순도의 동위원소 표지 단백질을 충분히 확보했다. 연구팀은 이 원료를 초전도 자석에 넣고 핵자기공명(Nuclear Magnetic Resonance, NMR: 자기장과 고주파를 이용해 분자 내부의 원자 배열과 구조를 정밀 분석하는 비파괴 기법) 기술을 활용해 원자 수준에서 분자들의 거동을 관찰했다.
NMR로 포착한 첫 단추: 인산 이온이 분자 스티커를 작동시킨다
핵자기공명 데이터는 거미줄이 액체 상태로 안정적으로 저장되는 원리를 보여주었다. 거미의 샘 내부에서 스피드로인 분자의 절반 이상은 고유 수용성 무질서 영역(intrinsically disordered regions, IDR: 일정한 접힘 구조 없이 삶은 국수 가닥처럼 자유롭게 요동치는 부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수많은 물 분자가 느슨한 단백질 사슬 사이에 침투해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수화층 구조 덕분에 고농도 단백질 원액은 굳지 않고 유동성을 유지하며 미세한 분비관을 막지 않았다.
결정적인 변화는 액체가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좁은 방사관 속으로 압출되는 찰나에 시작되었다. 관 내부의 화학적 환경이 급격히 변하면서 가장 핵심적인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인산 이온이었다. 주변 환경의 인산 농도가 높아지자 분자 스위치가 켜졌다. 스피드로인 사슬에 자리 잡은 두 가지 아미노산 부품, 즉 양전하를 띤 아르기닌(arginine)과 납작한 방향족 고리 구조를 지닌 티로신(tyrosine)이 서로를 향해 급격히 끌어당겨지기 시작했다.
사진: 연구진이 두꺼운 장갑을 착용한 채 소형 모터를 이용해 마취된 검은과부거미로부터 실크 섬유를 권취 추출하고 있다. 출처: Quanta Magazine (Greg Holland 제공).
이 두 아미노산은 원자 수준에서 ‘분자 스티커’ 역할을 수행했다. 인산의 자극을 받은 아르기닌과 티로신은 정밀하게 맞물려 촘촘한 물리적 결합점을 형성했다. 분자들이 서로 강하게 밀착하면서 사슬 사이에 끼어 있던 수분이 바깥으로 급격히 빠져나왔다. 흩어져 있던 단백질들은 빠르게 뭉치며 미세한 겔 액적 형태로 상분리를 일으켰다. 생물물리학계에서는 이처럼 탈수 과정을 거쳐 고농도로 뭉친 미세 액적을 응축체(condensate)라고 부른다.
이 두 장의 분자 스티커는 섬유가 완전히 완성될 때까지 결합을 유지했다. 미세 액적이 관을 통과하며 전단 응력을 받아 길게 늘어날 때, 아르기닌과 티로신은 골격의 꺾임 지점에 정확히 배열되었다. 이들은 단단히 맞물린 베타-병풍 구조(beta sheet: 긴 단백질 사슬이 나란히 결합해 형성하는 단단한 결정성 평면 판)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이 베타-병풍 구조야말로 거미줄에 놀라운 인장 강도를 부여하는 미세 구조의 핵심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한 응축: 탈수 방울이 강도를 빚어내다
실험 결과를 교차 검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분자역학 시뮬레이션(molecular dynamics simulation: 물리 법칙에 따라 컴퓨터로 분자들의 상호작용과 운동을 추적하는 수치 계산 기법)을 병행했다. 연구진은 알파폴드(AlphaFold) 알고리즘을 이용해 단백질 입체 구조를 예측한 뒤, 슈퍼컴퓨터에서 인산 수용액 환경을 재현했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NMR 실측 데이터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던 아미노산 사슬들은 특정 이온 조건에서 스스로 가까워지며 순식간에 고밀도 액적을 형성했다.
이번 발견은 생물물리학계에서 수년간 비어 있던 연결 고리를 채워 넣었다. 2020년 일본 교토대학교의 생체재료 화학자 누마타 케이지 연구팀은 거미가 실을 뽑아낼 때 반드시 액적 응축 상전이를 거칠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원자 수준의 실증 데이터가 부족해 단백질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힘에 의해 뭉치는지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외부 석학들도 이번 연구에 찬사를 보냈다. 캐나다 맥길대학교의 매튜 해링턴 교수는 응축체 형성이 자연계가 널리 활용하는 보편적인 조직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의 생물물리학자 양다이원 교수 역시 고분자 스피드로인이 고체 상태와 유사한 응축체로 직접 상전이하는 현상을 데이터로 명확히 입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짚었다.
홀랜드 교수는 인공 방사 연구에서 가장 핵심적인 중간 단계가 그동안 빠져 있었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실험들은 액체 상태의 단백질을 곧바로 당겨 섬유로 만들려 했을 뿐, 탈수와 응축이 일어나는 중간 과정을 건너뛰었다. 이 과정이 생략되면서 실험실에서 뽑아낸 실은 내부에 미세한 빈틈이 많이 생겨 천연 거미줄의 강도를 따라잡지 못했던 것이다.
상전이의 비밀 규명: 차세대 초강력 소재를 위한 제작 청사진
검은과부거미가 실을 잣는 분자 기전을 밝혀냄으로써 인공 거미줄 연구는 명확한 공정 지침을 얻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실험실 시도가 번번이 한계에 부딪혔던 까닭은 상전이에 필요한 화학 환경을 조성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절한 이온 신호가 없으면 단백질 사슬은 스스로 질서 있게 뭉치지 못한다. 공업용 방사 노즐 앞단에 정밀 제어된 인산 수용액 환경을 도입해 아르기닌과 티로신의 결합을 유도한다면, 고인성 섬유를 안정적으로 양산할 수 있는 명확한 청사진이 완성된다.
이러한 자기조립 원리는 다른 생체 모사 소재 개발에도 폭넓은 통찰을 제공한다. 자연계를 돌아보면 오징어의 부리는 어떤 광물질도 포함하지 않은 순수 단백질만으로 딱딱한 게 껍데기를 부순다. 거센 파도에 맞서는 홍합 역시 단백질만으로 초강력 수중 접착제를 만든다. 생물은 인간의 제철소처럼 고온과 고압에 의존하지 않는다. 수용액 속에서 흔한 아미노산의 전하와 산도를 미세하게 조절하는 것만으로 특수 합금을 뛰어넘는 견고한 구조물을 빚어낸다.
자연이 오랜 진화 끝에 찾아낸 경이로움은 흔한 물과 아미노산만으로 정교한 상전이를 제어하는 능력에 있었다. 검은과부거미가 인산 스위치를 이용해 단백질 골격을 어떻게 엮어내는지 밝혀짐에 따라, 강인한 인공 섬유 제조는 더 이상 맹목적인 시행착오에 머물지 않게 되었다. 원자 수준에서 규명된 이번 연구는 생물학의 퍼즐을 완성함과 동시에, 초강력 신소재를 향한 자연의 완벽한 설계도를 인류에게 건네주었다.
참고 링크:
- How Spiders Spin ‘Silk Dope’ Into Nature’s Toughest Material — Quanta Magazine
- 논문 원본 — PNAS (doi: 10.1073/pnas.2523198122)
- Scientists uncover molecular trigger that turns liquid spider silk — SD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