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에는 혹한이 닥쳐오면 사람들은 창문을 굳게 닫아걸고 난방을 올려 추위를 피하며 유행하는 독감 바이러스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매서운 추위와 두터운 눈 덮개는 병원체를 가로막아 연약한 생명에게 안전한 은신처를 제공할 것이라 본능적으로 믿기 마련이다.
캘리포니아의 험준한 시에라네바다산맥 고산 지대에서 갓 올챙이 티를 벗고 변태를 마친 작은 두꺼비들도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모진 겨울이 닥치기 전 수 피트 깊이의 땅속 굴로 파고들어, 지하의 온기에 의지해 눈보라와 영하의 추위를 견뎌내고자 했다. 그러나 봄이 찾아와 눈이 녹고 두꺼비들이 굴 밖으로 기어 나왔을 때, 생태학자들이 마주한 것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아니라 비극적인 죽음의 덫이었다.
몸길이 5cm 채 안 되는 유체, 혹한을 피해 땅속 굴로 파고들다
요세미티 두꺼비(Anaxyrus canorus)는 몸길이가 불과 2.5~7.6cm에 불과한 고산 양서류로, 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 고유종이다. 다 자란 성체조차 사람 손가락 반 마디 크기에 지나지 않는다. 서식지 감소와 병원체 확산으로 인해 2014년 미국 멸종위기종보호법(ESA)상 ‘위협(Threatened)’ 등급으로 지정되었다. 이들의 서식 구역은 매우 협소하여 요세미티, 세쿼이아, 킹스캐니언 국립공원의 고산 습지 초원에서만 극히 제한적으로 살아간다.
해마다 늦가을 고산 지대의 기온이 곤두박질치면 변태를 갓 마친 어린 유체들은 가혹한 생사의 갈림길에 선다. 체액이 얼어붙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은 설치류가 파놓은 폐굴이나 지하 틈새를 따라 깊숙이 내려가 두꺼운 눈 밑에서 겨울잠(브루메이션, brumation)에 든다. 몸길이 5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가냘픈 생명체들에게 땅속 굴은 모진 겨울을 버텨낼 수 있는 유일하고 안전한 은신처처럼 보였다.
UCLA 연구팀, 1,800개 면봉 검체로 눈 녹는 봄에 밝혀낸 충격적 진실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연구팀은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협력하여 대대적인 야생 추적 조사를 벌였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해발 수천 미터에 자리한 6곳의 고산 습지 관측지에서 성장 단계별로 총 1,800건의 피부 면봉 검체를 채취했다. 이 검체들은 코로나19 검사로 널리 알려진 고감도 중합효소연쇄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 PCR) 기술을 통해 항아리곰팡이 검출 검사를 거쳤다.
사진: 요세미티에서 야외 조사를 진행 중인 UCLA 생태학자 Dave Daversa. 출처: Phys.org (Dave Daversa)
검사 결과를 비교 분석한 연구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을철 동면에 들기 전 야생 유체의 피부에서 곰팡이가 양성으로 검출된 비율은 약 23%에 불과했고 대다수 개체는 건강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듬해 봄 눈이 녹아 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유체의 감염 양성률은 무려 90% 이상으로 폭증해 있었으며 상당수가 중증 감염에 시달리고 있었다. 반면 얕은 웅덩이에서 번식하는 성체 두꺼비의 감염률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사진: 고산 습지에서 검체를 채취하는 UCLA 학부생 Molly Posta. 출처: Phys.org (Dave Daversa)
상식을 깬 치명적 항아리곰팡이: 영하권 눈 밑 ‘육상’에서 대규모 증식
어린 두꺼비들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은 장본인은 바로 개구리항아리곰팡이(Batrachochytrium dendrobatidis, 일명 Bd)다. 양서류의 피부를 침식하여 수분과 전해질 흡수를 차단하고 치명적인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악명 높은 진균이다. 전 세계적으로 최소 500종 이상의 양서류 개체수를 급감시켰으며 약 90종을 멸종 위기로 몰아넣었다. 오랫동안 생물학계에서는 항아리곰팡이가 주로 수중 환경에서 전파되며, 봄과 여름 번식기 물웅덩이에서 감염 위험이 최고조에 달한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요세미티 고산 습지에서 확인된 실태는 이러한 오랜 통념을 단숨에 깨뜨렸다. 항아리곰팡이의 대규모 집단 감염은 물웅덩이가 아닌, 겨울철 동면을 치르는 땅속 굴이라는 ‘육상 환경’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제1저자인 데이브 다베르사(Dave Daversa)는 이번 결과가 완전히 예상 밖이었으며 기존의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뒤엎었다고 밝혔다. 공동 저자인 브래드 섀퍼(Brad Shaffer) 역시 눈 덮인 혹한의 지하 굴에서 진균이 활발히 증식한다는 사실은 생태학계에 던져진 거대한 충격이라고 강조했다.
동면으로 면역계 마비… 피난처가 병원체 배양기로 전락한 까닭
어째서 안전해 보였던 땅속 굴이 감염의 온상이 되어버렸을까? 겨울 내내 굴이 수 피트의 깊은 눈더미 속에 파묻혀 있어 연구진이 직접 굴 속으로 들어가 관찰하기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생태학자들은 매우 논리적인 매커니즘을 제시한다. 첫째, 일부 유체가 검출되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잠복 감염을 지닌 채 굴로 들어간 뒤 긴 겨울 동안 진균이 서서히 번식했을 가능성이다. 둘째, 추위를 피하기 위해 여러 마리의 어린 두꺼비들이 비좁은 굴속에 한데 엉켜 지내면서 밀접 접촉으로 인한 교차 감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다.
사진: 땅속 굴에 웅크리고 있는 요세미티 두꺼비. 출처: Phys.org (NPS / Sara Gabel)
생리학적인 핵심 원인은 숙주와 병원체 사이의 ‘내한성 격차(thermal mismatch)‘에 있다. 빙점에 가까운 저온의 지하 환경에서 변온동물인 두꺼비는 대사 기능과 면역 반응이 급격히 저하되어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빠진다. 반면 항아리곰팡이는 저온에서 활동이 둔화되기는 하지만 생장을 멈추지 않는다. 두꺼비의 면역력이 곤두박질치는 속도가 곰팡이의 성장 둔화 속도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에, 고요한 겨울잠 굴은 곰팡이가 제약 없이 복제되는 최적의 배양기로 돌변한 것이다.
보존 전략 전면 수정: 성체로 다 키운 뒤 야생으로 돌려보낸다
이번 발견은 항아리곰팡이의 전파 경로에 대한 학술적 이해를 넓혔을 뿐만 아니라, 멸종위기종 복원 현장의 보존 전략까지 근본적으로 뒤바꾸어 놓았다. 종전에는 샌프란시스코 동물원과 국립공원관리청의 인공 증식 프로그램에서 실험실 번식을 거쳐 변태를 갓 마친 어린 두꺼비를 고산 습지에 곧바로 방사하곤 했다. 자연 상태의 동면에 일찍 적응시키겠다는 의도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저항력이 전무한 어린 개체들을 병원체가 득실거리는 지하 온상 속으로 밀어 넣은 셈이었다.
겨울철 동면기의 감염 메커니즘이 명확히 규명되자 보존 팀은 즉각 전략을 수정했다. 이제는 온실 등 안전한 환경에서 어린 두꺼비를 수년간 키워 면역력과 생존력을 갖춘 성체로 성장시킨 뒤에야 야생으로 방사한다. 이로써 가장 취약한 ‘첫 겨울잠’이라는 치명적인 감염 시기를 안전하게 건너뛰게 만들어, 위기에 처한 요세미티 두꺼비 개체군 회복에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
땅속 굴에서 혹독한 추위를 넘겼다고 해서 진정한 생존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눈 덮인 동면 굴은 치명적인 진균이 조용히 번식하는 은밀한 온상이었으며, 겨우내 버틴 유체들은 눈을 뜨자마자 중증 감염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계절의 순환 속에서 병원체가 실제로 숨어드는 진짜 은신처를 찾아낼 때에만,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을 지켜낼 실효성 있는 방어막을 세울 수 있다.
참고 링크:
- Science News 보도
- Phys.org (UCLA) 보도자료
- Functional Ecology 원본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