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대양을 항해하던 어분 운반선에서는 최소 87건의 자연발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상황이 가장 심각했을 때는 한 해에만 화물선 16척이 바다 한가운데서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선박 침몰과 선원 사망을 막기 위해 다국적 곡물 기업들은 사료 원료에 산업용 합성 물질을 도입했습니다. 본래 고무의 노화 방지제로 쓰이던 합성 항산화제 에톡시퀸(Ethoxyquin)이었습니다.
50년이 흐른 지금, 화물창의 화재를 막기 위해 투입되던 화학물질은 육지로 돌아와 현대 수산 양식 유통망을 타고 인류의 식탁에 오르고 있습니다.
한 해 16척 전소, 원양 화물 사고가 낳은 의무적 방화 규정
원양 해운 역사에서 대량의 건조 어분은 다루기 까다로운 대표적 위험 화물이었습니다.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어분 수천 톤이 밀폐된 화물창에 압축 적재되면, 표면 지방질이 공기와 접촉하면서 끊임없이 산화열을 방출합니다.
화물창 내부 환기가 차단되면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축적되다가 발화점에 도달하는 순간 예고 없이 자연발화로 이어집니다. 화재와 침몰이 잇따르자 다국적 해상 보험사들은 화학 처리가 되지 않은 어분의 선적 인수를 거부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림: 1966년 항해 도중 어분 자연발화로 화재가 발생한 화물선. 출처: Inside Climate News
1967년 미국 곡물 기업 카길(Cargill)은 공학적 대응책으로 어분에 에톡시퀸을 처리하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원래 고무 경화 방지용으로 개발된 이 합성 항산화제는 과산화 자유 라디칼을 빠르게 포획하며 천연 비타민보다 화학적 안정성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카길은 성명을 통해 자신들이 해당 화학제를 직접 발명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어분 생산 과정에서 톤당 극소량을 분사하는 것만으로 연쇄 산화 반응을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도입 직후 전 세계 어분 화물선 화재는 연간 약 5건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해상 위험이 진정되면서 표준화된 방화 장벽이 구축되었습니다.
해사 규정에 묶인 처방, 양식 붐 타고 식탁으로 번지다
기술적 효과가 검증되자 행정 규제가 발 빠르게 뒤따랐습니다. 1976년 미국 해안경비대(USCG)는 미국 항구에 입항하는 모든 산적 어분에 에톡시퀸 처리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발표했습니다.
3년 뒤 국제해사기구(IMO)는 위험물 운송 규칙을 개정하며 에톡시퀸을 어분 해상 운송의 표준 안정제로 공식 권고했습니다. 해운 규제의 최우선 가치는 항해 안전과 선박 보존이었습니다. 해사 당국의 계산에서 선박 화재를 막는 것은 그 어떤 사안보다 우선하는 절대적 지표였습니다.
그림: 1950년부터 1978년 사이 어분 유통망 화재 빈도 통계. 항산화제 도입 이후 사고가 급격히 감소했다. 출처: Inside Climate News
이 엄격한 지침은 에톡시퀸을 사료 원료 생산 라인에 법적으로 묶어두었습니다. 화학 처리를 거치지 않은 어분은 감항 증명서조차 발급받을 수 없었습니다. 규정 제정 초기 어분은 주로 가축과 가금류 사료로 사용되었으며, 긴 사육 기간과 분산된 생육 구조 덕분에 육류 체내 잔류 축적은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며 천연 어획량이 한계에 다다르자 산업형 수산 양식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식용 해산물의 절반 이상이 가두리와 양식장에서 생산됩니다. 연어, 농어, 새우 등은 고단백 사료에 크게 의존합니다. 화물선 화재를 막기 위해 투입되던 항산화 물질이 수산 사료의 핵심 성분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입니다.
변이원성 불순물 확인, 규제 갈림길에 선 유럽과 미·아시아
식품과학계의 경고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1969년 유엔 전문가 위원회가 첨가제 잔류 위험을 지적했고, 1987년 영국 독성학 실험에서는 장기 섭취한 쥐에서 간과 신장 병변이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초기 동물 실험 결과만으로는 공고한 상업 유통망을 흔들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규제 폭풍으로 비화한 것은 2015년 유럽식품안전청(EFSA)이 종합적인 재평가를 마친 뒤였습니다. 조사팀은 에톡시퀸 합성 과정에서 분리가 어려운 불순물인 파라페네티딘(p-phenetidine)이 불가피하게 동반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세포 실험 결과 파라페네티딘은 유전자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줄 수 있는 명확한 변이원성 위험을 지닌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어류 체내 대사 부산물 역시 지방 조직에 잔류 축적되었습니다. 새로운 병리학적 근거를 마주한 유럽 규제 당국은 신속하게 조치를 내렸습니다.
2017년 유럽연합(EU)은 사료 첨가제로서 에톡시퀸 승인을 공식 중단했습니다. 영국과 노르웨이 등 유럽경제지역(EEA) 회원국들도 전면 금지에 동참했습니다. 반면 미국, 한국, 일본, 호주 등은 수십 년 전 설정된 관대한 잔류 기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여전히 어분 사료 내 일정 한도의 화학 잔류를 허용합니다.
규제 집행 체계 자체의 공백도 지적됩니다. 2024년 유럽연합이 캐나다 감독 기관을 감사한 결과, 당초 계획된 사료 검사의 약 40%만 수행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보고서는 이를 “구조적이고 심각한 집행 부족”이라고 명시했습니다.
대체제는 비싸고 전환 비용은 기피하는 다국적 공급망
대서양을 사이에 둔 규제 격차는 글로벌 공급망의 이해관계 대립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유럽과 여타 국가들이 갈라선 이면에는 생산 공정 전환 비용을 누구도 선뜻 떠안으려 하지 않는 현실이 있습니다.
실험실 수준에서 천연 대체재는 이미 존재합니다. 혼합 토코페롤(비타민 E)이나 로즈메리 추출물은 뛰어난 항산화 성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연 추출물은 비용이 훨씬 비싸며 열대 항로의 고온 환경에서 산화 방지 효과가 더 빠르게 감소합니다. 업계에서 보다 저렴한 대안으로 쓰이는 합성 항산화제 BHA 역시 안전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미국 국립독성프로그램은 1991년 이미 BHA를 “합리적으로 인체 발암성이 예측되는 물질”로 분류했고, 2008년 일본 연구진은 실험 쥐에서 악성 종양을 유발한 바 있습니다. FDA 또한 2026년 2월 식품 첨가물로서 BHA의 안전성 재평가 방침을 밝혔습니다. 세계 최대 어분 수출국인 페루와 칠레 가공업체들은 해외 수출 과정에서 이중의 딜레마에 직면해 있습니다.
페루의 주요 어분 생산업체 MSICeres 관계자는 2022년 업계 웨비나에서 실제 흐름을 설명했습니다. 페루 현지 시장을 시작으로 에톡시퀸 기피 움직임이 확산되어, 현재 페루에서 유럽, 캐나다, 미국, 호주로 향하는 어분은 전부 해당 물질이 제거되었으며 영국과 노르웨이 바이어들도 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수출 기업은 기존 설비를 병행 운용하며, 화학물질이 포함된 어분을 규제가 느슨한 아시아와 중남미 시장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글로벌 마트 진열대에는 모자이크식 기준이 적용됩니다. 유럽 현지 양식 해산물에서는 잔류물이 철저히 배제되는 반면, 바다 건너 시장에서는 동일한 어종이 합법적으로 유통됩니다.
약품 처리된 해산물에 “지속가능” 라벨이 붙는 순간 법적 리스크도 현실화됩니다. 미국에서는 그린워싱을 겨냥한 소비자 집단소송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2022년 뉴욕 주민들은 에톡시퀸이 검출된 대서양 연어를 지속가능하다고 홍보한 알디(Ald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같은 해 뉴욕과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지속가능하게 공급되었다고 표기된 고든스(Gorton’s)의 냉동 틸라피아에 대해 소송을 냈습니다. 두 사건 모두 법원 밖 합의로 종결되었습니다.
사고로 도입된 기술, 퇴출 비용을 둘러싼 제도적 지연
지난 반세기의 궤적은 산업 화학물질이 마주하는 제도적 고착(Lock-in)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특정 화학물질이 산업의 중추로 자리 잡는 데는 한 번의 돌발 안전사고만으로 충분합니다.
잇따른 선박 화재는 해운 당국으로 하여금 방화 안정제를 서둘러 채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행정 명령은 특정 화학 성분을 해운 표준에 단단히 각인시켰습니다. 해운 기구의 목표는 선박 보존과 항구 안전입니다. 반면 미량 섭취와 만성 축적을 추적해야 하는 식품안전 당국은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데 수십 년의 시간을 소모합니다.
뒤늦게 독성학적 결론이 도출되었을 때 구시대 기술은 이미 거대한 글로벌 무역망의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기존 표준을 바꾸는 비용은 매우 막대합니다. 감항성 재시험을 거쳐야 하고 값비싼 천연 대체재 사용에 지속적인 비용이 듭니다.
해운 당국은 방화 규정을 스스로 개정할 유인이 없고 다국적 곡물 기업은 전환 비용을 혼자 떠안기를 꺼리며 비유럽권 규제 당국은 현상 유지를 선호합니다. 화학물질의 퇴출 속도는 현미경 아래의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구시대 규칙을 바꾸는 데 드는 실질적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가가 대립의 핵심입니다.
재평가와 전환 비용의 주체가 명확해지지 않는 한 오래된 첨가제는 저절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반세기 전 화물선 화재를 막기 위해 고안되었던 산업용 화학물질은 해운 안전과 식탁 위생이라는 제도적 틈새 속에서 오늘도 국경을 넘어 유통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 Inside Climate News 심층 보도
- Hacker News 토론 (item?id=50134359)
- 유럽식품안전청(EFSA) 안전성 평가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