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4번째 도시에서 멈췄지만 AI는 85분 만에 55개 도시를 완성해버린 이유

인간은 4번째 도시에서 멈췄지만 AI는 85분 만에 55개 도시를 완성해버린 이유

AI생성형 콘텐츠LLM

데이터 소스:HN + web research

55개의 가상 도시와 엄격한 단 한 줄의 명령

2026년 10월 초,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오랜 기간 개발해 온 한 프로그래머가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이탈로 칼비노의 문학적 고전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텍스트 전편을 작업 환경에 넣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55개의 도시 전체를 단 한 번의 지시로 동작하는 3D 시각화 프로젝트로 완성해 보라고 프론티어 AI 모델에 요청했다. 거미줄 위에 매달린 공중 도시, 수상 가옥, 거울에 비친 도시 등 시적이고 은유적인 언어로 가득 찬 이 책은 오랜 세월 수많은 인간 창작자들에게도 거대한 도전 과제였다.

하지만 그가 모델에 내린 프롬프트는 단 한 줄에 불과했다.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나오는 55개 도시 전체를 Three.js(pnpm)로 시각화하라. 질문은 일절 금지한다. 이것은 단 한 번에 끝내야 하는 원샷(one-shot) 작업이다. 6시간의 작업 시간을 줄 테니, 걸작이 될 때까지 시간을 모두 쓰라.” 이 지시어는 인간의 개입이나 대화를 통한 방향 수정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넉넉한 런타임 예산을 부여했다. 즉, 알고리즘을 인간의 피드백 루프에서 떼어내어 문학적 해석부터 3D 씬 구축에 이르는 전 과정을 블랙박스 안에서 홀로 완주하도록 밀어붙인 셈이다.

이전 세대 모델로 이와 유사한 프로젝트를 시도했을 때는, 단순한 어원 계통도를 그리는 작업조차 초안의 반짝이는 감탄 뒤에 기나긴 좌절감이 뒤따르곤 했다. 인간 작업자가 며칠 동안 매달려 기계 특유의 조악한 군더더기(AI slop)를 걷어내고, 겹쳐진 시각 요소를 수작업으로 바로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최신 코딩 에이전트가 보여준 한계선은 완전히 다른 궤도에 진입해 있었다.

74달러로 고용한 6개의 분신과 단 한 번의 생성

실험자는 현재 가장 강력한 두 모델을 한 무대에 세워 경쟁시켰다. 먼저 나선 것은 OpenAI Codex 기반의 GPT-6 Astra였다. Astra는 53분 만에 전체 파이프라인을 완주했고, API 비용은 단 10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10달러가 내놓은 결과물은 전형적인 기계식 디자인 폐기물에 가까웠다. 화면은 불필요한 개념 설명과 쓸데없는 주석 텍스트, 그리고 굳이 표시하지 않아도 될 뻔한 설명문들로 어지럽게 뒤덮여 있었다.

그림: GPT-6 Astra가 생성한 결과물. 밝은 배경 위 나선형 탑 형태로 묘사된 이시도라(Isidora). 출처: Quesma 블로그

심지어 Astra는 경쟁 모델의 시각 스타일을 흉내 낸 듯 베이지색 배경을 채택하고 05 같은 기묘한 번호를 매기기도 했다. 이러한 문자열은 백엔드 디버깅용 태그로는 유용할지 몰라도, 3D 뷰포트에 그대로 노출되는 순간 순수한 시각적 소음에 불과하다. 10달러로 작동하는 Three.js 코드를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은, 미학적 수렴 과정이 결여된 저렴하고 빠른 연산력이 얼마나 쉽게 무의미한 요소들의 과잉으로 전락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어 등장한 Claude Code 기반의 Claude Opus 5.5는 전혀 다른 파괴적인 접근 방식을 선보였다. 6시간이라는 넉넉한 시간 예산 앞에서, 로그에 따르면 이 모델은 실제 작업에 1시간 25분만을 소요했다. 하지만 이 85분의 현실 시간 뒤편에서는 놀라운 에이전트 병렬 확장이 일어나고 있었다. Opus 5.5는 6개의 독립적인 서브에이전트(분신)를 동시에 가동하여 총 7시간 분량의 컴퓨팅 연산을 쏟아부었고, 최종적으로 74달러의 청구서를 내놓았다. 자원 제약이 풀리자 최신 프론티어 모델은 고병렬 연산 능력을 투입해 인간의 물리적 시간을 압축하는 방식을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그림: Claude Opus 5.5가 생성한 3D 시각화. 어두운 밤을 밝히는 불빛들이 인상적인 도시 풍경. 출처: Quesma 블로그

7배나 비싼 비용은 실험자를 경탄케 한 결과물로 보답했다. Opus 5.5는 이전 세대처럼 지저분한 설명 텍스트를 늘어놓지 않았고, 완성된 화면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며 구조적으로 견고했다. 실험자는 “이것이 현재 모델의 실질적인 천장이라면, 그 한계선은 이미 경이로울 정도로 높은 곳에 걸려 있다”고 감탄했다. 74달러가 사들인 것은 단순한 코드가 아니라, 불필요한 노이즈를 스스로 걸러내는 시스템 자체의 미학적 판단력이었던 셈이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네 번째 도시 앞에서 펜을 내려놓은 이유

85분 만에 완성된 이 놀라운 기적의 곁에는 다소 서글픈 인간 대조군이 놓여 있었다. 이 실험을 본 한 일러스트레이터는 몇 년 전 원작 소설을 읽은 뒤 아이패드의 Procreate에서 등각 투영(아이소메트릭) 그리드를 이용해 55개 도시를 손으로 직접 그려보려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4번째 도시에서 붓을 멈추고 포기해야 했다. 도시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수 시간의 극심한 에너지와 집중력이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이 극적인 대비 속에서 진정으로 무너져 내린 것은 ‘기계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표면적 사실이 아니다. 시각 창작을 지탱해 온 ‘시간 비용 구조’ 그 자체가 붕괴했다는 점이다. 과거 창작자가 55점의 도시 일러스트를 선보였을 때, 수백 시간의 고단한 묘사 과정 그 자체가 작품의 가치를 입증하는 증명서였다. 그 시스템 안에서는 몇 시간 동안 공들여 선을 긋는 물리적 노고가 곧 작품의 귀중함과 동의어였다.

그러나 74달러와 85분 만에 55개 도시 전체가 3D 공간으로 렌더링되는 현실 앞에서, 투입된 시간에 기반한 가치 변호는 지지 기반을 잃어버렸다. 생산성의 격차는 인간의 끈기나 인내심으로 메울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스크린에 펼쳐진 거시적 윤곽의 첫인상만 놓고 본다면, 한 명의 인간 그림 작가는 병렬로 군집을 이룬 알고리즘의 생산력에 더 이상 맞설 수 없게 된 것이다.

확대하면 남는 것은 열정 없는 판지 무대 세트뿐이다

거대한 규모의 제작이 더 이상 진입장벽이 되지 못하자, 인간 관객의 감식안은 더 높은 곳으로 밀려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Hacker News 커뮤니티 토론에서 한 사용자가 남긴 날카로운 비평은 기계 생성물이 지닌 치명적인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 “인간이 만든 예술 작품을 볼 때 나는 늘 작은 디테일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각 부분을 어떻게 연결했는지 보고 싶어서 화면을 ‘확대’해 보곤 한다. 하지만 AI가 만든 결과물은 첫눈에는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전혀 확대해 보고 싶지 않다. 열정이라고는 없는 판지 무대 세트에 불과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겉보기의 화려함 뒤에 숨은 실상은 화면에 조금만 다가가도 금세 드러난다. 시야를 확대해 보면 강의 양쪽 기슭을 연결하지도 못한 채 수면 위에 덩그러니 떠 있는 다리나, 용도와 재질조차 알 수 없는 Three.js 원통들이 의미 없이 엉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생성형 알고리즘의 장점은 통계적 분포에 부합하는 거시적 윤곽을 매끄럽게 짜내는 데 있지만, 인간 창작자의 집요한 설계와 편향이 채워져야 할 미시적 구석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눈속임만을 내놓을 뿐이다.

이것은 인간의 작품이 아직 빼앗기지 않은 마지막 특권이기도 하다. 완벽한 기하학적 규칙에 들어맞지 않는 비효율적인 세부 묘사, 그리고 창작자가 의도적으로 숨겨둔 사적인 변칙성 말이다. 완제품을 얻는 한계 비용이 0으로 수렴하는 시대에 관객은 더 이상 단순히 도시 하나를 그려냈다는 사실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대신 도시 한구석에 무너져 내린 벽돌 한 장의 사연에 시선을 멈춘다. 확대 검증을 견뎌내지 못하는 거대한 스펙터클은 결국 값싼 픽셀 소비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알고리즘이 건넨 출발선과 인간이 완주해야 할 긴 여정

물론 모든 이들이 대형 언어 모델의 결과물을 최종 완성본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공학적 시각을 지닌 이들은 모델의 진정한 강점이 기존의 창작 방식을 빠르게 모방해 길고 지난한 개발 여정에서 압도적인 출발선의 우위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본다. 한 댓글 작성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나는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언제나 초안, 혹은 모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완제품의 형태를 갖춘 무언가’로 생각한다. 모델의 창작 능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완성된 결과물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기대하지 않을 뿐이다. 모델은 기존의 창작물과 해결책을 모델링하여 긴 여정에서 앞서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데 탁월하지만, 그 길을 실제로 걷고 여행을 마쳐야 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

알고리즘의 결과물을 미들웨어로 규정하는 이러한 태도는 도구로서의 현실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실제로 이번 실험과 같은 시기에 한 개발자는 Opus 5.5에 카메라 초점 원리를 설명하는 인터랙티브 데모를 제작하도록 요청했다. 이 역시 단 한 번의 시도로 1시간 26분 만에, 25.66달러의 비용으로 훌륭한 기능적 시연 도구를 완성해 냈다. 순수 예술적 표현이 아닌 교육이나 개념 전달 목적이라면 기계가 전달하는 ‘완제품 형태의 틀’만으로도 이미 실용적 요구를 충분히 충족한다.

그러나 이는 창작의 본질에 대한 피할 수 없는 궁극적인 질문을 던진다. 예술적 창작이 블랙박스에 프롬프트를 넣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종의 뽑기 게임으로 변해간다면, 10년 뒤 이 작품들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는 누구일까? 태블릿 위에서 한 획 한 획 고뇌하며 네 개의 도시를 새겨 넣었던 일러스트레이터일까, 아니면 74달러를 들여 55개 도시를 훑어본 뒤 저장 버튼을 누른 개발자일까? 실험자 역시 깊은 경외감 속에서 창작의 사슬 위 자신의 위치를 되묻고 있다. 인간의 고유한 경험이 지닌 무게감은 애초에 저 매끄럽게 렌더링된 3D 화면 속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고 링크:

  • Quesma 블로그 실험 보고서
  • Hacker News 커뮤니티 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