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4일, 프랑스 최고행정법원(Conseil d’État)은 상식을 뒤흔드는 판결을 내렸다. 오픈 액세스 활동가 코스모 웬먼(Cosmo Wenman)이 파리 로댕 미술관을 상대로 퍼블릭 도메인 조각상의 3D 스캔본을 요구하며 벌여온 8년간의 정보 공개 소송이 전면 기각되었을 뿐만 아니라, 법원은 오히려 웬먼에게 미술관 측에 3,000유로의 소송 비용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웬먼은 단 1바이트의 데이터도 받지 못했다.
이 판결에서 최고행정법원은 단 하나의 법적 정의를 이용해 공공 자금으로 완성된 디지털 문화유산 자산을 수장고 깊은 곳으로 다시 가두어버렸다. 재판부는 3D 스캔 점군(point cloud) 파일이 실물 복제품과 법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점군 파일의 복잡한 데이터 구조를 이해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판사가 “문서가 때로는 문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선언한 순간, 프랑스의 정보 공개법은 자의적으로 무력화되는 요식 행위로 전락했다.
소장 기관조차 데이터를 열 수 없다는 모순된 변명
이 분쟁은 2017년에 시작되었다. 코스모 웬먼은 프랑스 정보 공개법에 근거하여 파리 로댕 미술관에 소장 조각상의 3D 스캔 데이터를 특정하고 공개해 줄 것을 정식 요청했다.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들은 이미 오래전에 퍼블릭 도메인으로 전환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복제되는 문화유산 중 하나다. 공공 자금을 투입하여 스캔을 완료한 이상, 이 자산은 마땅히 대중에게 투명하게 개방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 신청에 직면한 미술관의 1차 방어선은 기술적 장벽과 ‘무능의 무기화’였다. 미술관 측은 답변서를 통해 해당 초고해상도 레이저 스캔 점군 파일이 극도로 난해하고 품질이 형편없으며 데이터가 매우 불완전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데이터가 너무 깨져 있어서 미술관 자체 인력으로도 시각화 처리를 할 수 없다는 황당한 논리를 법정에 들이밀었다.
파일의 품질이 엉망이라 쓸 수 없다고 주장하던 미술관은, 뒤이어 이 스캔본이 유출되면 위조범들에게 악용될 수 있다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쳤다. 이전 답변서에서는 《세 망령》(Les Trois Ombres)의 3D 스캔본을 보유하고 있다고 흑백으로 명시했으면서도, 바로 다음 답변서에서는 해당 작품을 스캔한 적 자체가 전혀 없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사진: 로댕 미술관 현장에서 하청업체가 레이저 장비로 ‘세 망령’을 스캔하고 있는 모습. 출처: Cosmo Wenman의 보도
이러한 모순된 번복 앞에서 웬먼은 결정적인 증거를 법정에 제출했다. 바로 하청업체가 로댕 미술관 현장에서 조각상을 직접 레이저 스캔하던 당시의 작업 사진이었다. 빈틈없는 증거 사슬은 거짓을 폭로했다. 행정 기관이 데이터를 숨기려 마음먹으면, 스스로 공금을 들여 외주를 준 엔지니어링 프로젝트마저 일방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법원의 판결마저 무시한 박물관
초기 행정 절차에서는 규칙이 신청인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프랑스 행정문서접근위원회(CADA)는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CADA는 이 3D 스캔본들이 의심할 여지 없이 행정 문서에 해당하며, 행정 기관은 법에 따라 이를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확인했다.
미술관 관장은 이 공식 판단을 법리적으로 반박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프랑스 문화부에 보낸 내부 서한에서 미술관의 진짜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관장은 정보 공개법을 고의로 무시할 계획이며, 신청인이 자신들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걸도록 유도하겠다고 명시했다.
2019년, 웬먼은 파리 행정법원에 공식 소송을 제기했다. 코뮤니아(Communia), 위키미디어 프랑스(Wikimédia France), 라 카드라튀르 뒤 네(La Quadrature du Net) 등 디지털 권리 옹호 단체들이 공동 원고로 참여했다. 4년간의 치열한 법적 공방 끝에 파리 행정법원은 2023년 12월 판결을 선고했다. 법원은 3D 스캔본이 행정 문서임을 인정하고 미술관에 데이터 제공을 명령하는 한편, 미술관이 웬먼에게 1,500유로를 보상하라고 판결했다.
패소에 직면한 로댕 미술관과 프랑스 문화부는 항소 절차조차 밟지 않았다. 그들은 법원의 판결을 완전히 무시하고 집행을 거부했다. 동시에 해당 판결에서 담당 판사는 독자적인 기술적 예외를 임의로 만들어냈다. 점군 파일이 순수 텍스트(plaintext) 형식일 경우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이한 예외를 둔 것이다. 원시 데이터 형식에 대한 하급심 판사의 왜곡된 이해는 이후 판결이 완전히 뒤집히는 결정적인 복선이 되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소송은 마침내 2025년 말 프랑스 최고행정법원(Conseil d’État)에 도달했다. 디지털 문화유산의 공공 귀속 여부를 결정짓는 이 구두 변론에서 초현실적인 법정 드라마가 연출되었다.
최고행정법원의 보고관(rapporteure publique: 법원 소속 법률 조사관)은 모두 진술에서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1929년 명작 《이미지의 배반》을 인용했다. 파이프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힌 바로 그 작품이다. 보고관은 이 그림을 빌려 재판관들에게 “문서가 때로는 문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어 보고관은 《아카데미 프랑세즈 사전》에 실린 ‘문서(document)‘의 법적 정의를 법정에서 낭독했다. 우스꽝스럽게도 그녀는 낭독 도중 갑자기 말을 더듬으며 멈춰 섰다. 사전의 권위 있는 표준 정의가 자신이 입증하려던 논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고 측은 학계, 산업계, 예술계 최고 전문가들의 방대한 증언을 제출하며 논의를 기술적 상식의 궤도로 되돌리려 애썼다. 그들은 법정에서 행정부의 거대한 모순을 지적했다. 프랑스 정부 스스로가 공식 포털을 통해 전 국토를 아우르는 항공 3D 점군 데이터를 페타바이트(PB) 규모로 대중에게 무료 공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문화부 역시 문화유산 분야를 위한 공개 형식 점군 표준 가이드라인을 이미 발간한 상태였다.
사진: 로댕 미술관 소장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세 망령(부분)’, ‘입맞춤’의 점군 스캔 데이터 시각화. 출처: Cosmo Wenman의 보도
동일한 3D 점군 포맷이 국토측량 기관에서는 페타바이트 규모로 공개되는 지리 데이터로 취급받지만, 미술관 손에 들어가면 자체적으로 시각화조차 불가능한 신비로운 비공개 자산으로 둔갑한다. 기술적 기준은 행정 소송에서 관료들이 필요에 따라 마구잡이로 가져다 붙이는 핑곗거리로 전락한 셈이다.
자의적인 법적 규정 하나로 지워진 8년의 소송
2025년 12월 24일, 최고행정법원은 최종 판결봉을 두드렸다. 판결문은 페타바이트 규모의 데이터나 시각화 난이도 같은 기술적 쟁점에는 일절 발을 들이지 않았다. 모든 기술적 사실관계를 완전히 우회한 채 단 하나의 결정적인 법적 규정을 내놓았다.
법원은 로댕 미술관의 문화유산 3D 스캔본이 법적으로 실물 복제품과 구별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실물 복제품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 이상, 이 디지털 파일들은 ‘행정 문서’에 해당하지 않으며, 미술관이 보유한 ‘양도할 수 없는 소장품 자산’의 일부가 된다는 논리였다.
이 논리는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덫을 만들었다. 정보 공개법은 오직 행정 문서에만 적용되는데, 3D 스캔본이 실물 소장품으로 재정의되었으므로 정보 공개법 자체가 이 사건에 적용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적용 법률 자체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법원은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나 기술적 세부 사항, 미술관 측의 명백한 자기모순을 심리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최고행정법원은 모든 상고를 기각했을 뿐만 아니라, 원고에게 로댕 미술관 측에 3,000유로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은 통상적인 송달 절차마저 무시한 채 판결 서면 통지서조차 원고에게 발송하지 않았다. 8년간의 치열한 법정 다툼 속에서 축적된 800페이지 이상의 소송 기록은 그렇게 영구히 비공개로 봉인되어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2026년 10월 13일, 코뮤니아(COMMUNIA)는 퍼블릭 도메인 문화재의 3D 스캔 데이터를 자유롭게 재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주제로 살롱을 개최할 예정이다. 그러나 디지털 공유재산의 경계를 둘러싼 이 공론장은 사법부의 판결 한 장으로 이미 견고한 한계선이 그어져 버렸다.
8년에 걸친 이 대치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통제권이 위협받을 때, 독점적 해석권을 쥔 권력 기관은 코드나 파일 포맷 따위를 이해할 필요조차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공공 자금으로 구축한 열린 데이터라도, 디지털 파일을 물리적 실체라고 다시 이름 붙이기만 하면 언제든 미술관 금고 속에 가두어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 링크:
- Cosmo Wenman의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