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명이 빚어낸 슈퍼 마리오 64: 컨트롤러 없이 버틴 반년, 두 개발자가 업계를 떠난 이유

15명이 빚어낸 슈퍼 마리오 64: 컨트롤러 없이 버틴 반년, 두 개발자가 업계를 떠난 이유

닌텐도슈퍼 마리오 64게임 개발미야모토 시게루N64

데이터 소스:NGC 杂志 2001 年访谈 + pixelatron 全文公开

게임 역사상 3D 조작의 표준을 정립한 기념비적 작품 《슈퍼 마리오 64》의 개발팀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작 15명 안팎에 불과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당시에는 완성된 N64 실기도 없었고, 아날로그 스틱이 달린 컨트롤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초기의 마리오는 SGI 워크스테이션 에뮬레이터 위에서 겨우 발을 뗐다.

대중은 이러한 역사적 개척작을 흔히 천재의 번뜩이는 영감 덕분으로 돌리곤 한다. 하지만 핵심 프로그래머로 참여했던 자일스 고다드(Giles Goddard)가 2001년 NGC 매거진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그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혹독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으며, 게임이 완성된 후 개발에 참여했던 프로그래머 두 명은 다시는 게임 업계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15명의 팀원, 첫 6개월 동안은 진짜 컨트롤러조차 없었다

팀 규모는 막바지에도 15명 안팎이었다. 고다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훗날 나온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와 비교하면 극도로 단출한 규모였다.

게임의 기초는 하드웨어 실기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API를 흉내 내던 SGI Onyx 시뮬레이터에서 출발했다. 마리오를 화면에서 처음 움직이게 만든 사람은 훗날 프로젝트를 이끈 메인 프로그래머 니시다(Nishida)였다. 시뮬레이션 환경에서의 개발은 실제 기기의 하드웨어 병목 현상을 순전히 짐작에 의존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완성된 실기 기기에서 어디가 발목을 잡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초기 6개월 동안 팀에는 N64 컨트롤러가 단 한 개도 없었다. 시뮬레이터 기판 뒤로 길게 뽑아낸 시리얼 케이블 한 줄이 전부였다. 개발자들은 개조된 세가(Sega) 컨트롤러를 연결했고, 다수가 이 장비로 초기 프로토타입 개발을 마쳤다. 2D 시대 라이벌 콘솔의 주변기기를 가져다가 역사상 가장 중요한 3D 게임의 손맛을 조율하고 있었던 셈이다.

슈퍼 마리오 64 캐릭터 액션과 카메라 시점 그림: 개조된 장비와 끝없는 수치 미세 조정을 거쳐 완성된 3D 액션. 출처: NGC 매거진 인터뷰 / pixelatron

고다드가 당시 맡았던 작업은 타이틀 화면에서 스틱으로 잡아당기며 늘릴 수 있는 탄력 있는 마리오의 얼굴이었다. 본래는 로딩 시간 동안 플레이어가 지루하지 않도록 띄워두는 임시 연출에 불과했으나, 뜻밖에도 실시간 정점 변형(vertex deformation) 기술의 시험장으로 발전했다. 당시 게임들은 고정된 정점 데이터를 변환 행렬로 옮기는 수준이었지만, 그들은 모든 정점 하나하나를 실시간으로 직접 주무르고자 했다.

컨트롤러 프로토타입만 100개, 카메라 코드는 수천 번 재작성

십자키는 8방향뿐이지만, 3차원 입체 공간이 요구한 것은 매끄러운 무단계 연속 입력이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저항감과 감도를 잡기 위해 팀은 최소 100가지의 컨트롤러 시제품을 제작했다. 작업의 대부분은 가운데 아날로그 스틱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둘러싼 가이드 테두리가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었다. 결국 칠각형 테두리로 결정되었지만 원형 구조 역시 시험 대상이었다.

이 컨트롤러 구조는 훗날 업계의 표준이 되었으나, 정작 미야모토 시게루 본인은 완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훗날 좌우 양쪽에 대칭으로 십자키를 두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 회고했으며, 노란색 C 버튼들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결과를 확인한 뒤의 감상일 뿐이다. 당시 팀은 아무런 전례가 없던 3D 조작의 절대 기준을 세워야만 했다.

아날로그 스틱보다 개발진을 더 갉아먹은 것은 카메라 시스템이었다. 취소된 슈퍼패미컴판 《스타폭스 2》에 참여했던 카와고에 타쿠미(Takumi Kawagoe)는 개발 전체 과정 동안 오직 카메라 하나에만 매달렸다. 미야모토 시게루 역시 3D 공간에서 카메라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기에, 시스템은 수천 가지 방식을 맴돌았다. 타깃 고정, 자유 시점, 반고정, 플레이어에게 완전 위임 사이를 쉼 없이 오갔다.

개발 자원의 90% 이상이 이동과 카메라에 쏟아부어졌다. 미야모토 시게루의 주된 일과는 프로그래머 옆에 하루 종일 붙어 앉아 빌드를 직접 테스트하며 조작감과 시점을 다듬고 자연스러운 손맛을 빚어내는 것이었다. 첫 번째 스테이지인 폭탄병의 전장(Bob-Omb’s Battlefield)은 작업 시작부터 마리오가 달리고 적들이 배회하기까지 불과 6~7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시 닌텐도 본사 개발진은 3D 게임을 단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었고, 그래픽 아티스트들조차 3D 모델을 어떻게 게임 내 오브젝트로 변환해야 할지 막막해하던 시절이었다.

소니의 연산력에 밀리자, 철저한 감추기로 거대한 세계를 구현하다

N64는 본질적으로 빠른 하드웨어가 아니었다. SGI 측의 주장은 “우리의 픽셀 품질은 그 누구보다 우수하다”는 것이었다. 렌더링되는 모든 픽셀에 텍스처 매핑, 색감, 라이팅, 안티앨리어싱 처리를 정성스레 입혔기 때문이었다. 반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은 연산 속도 면에서 훨씬 빨랐지만 픽셀 표현은 거칠었다. 닌텐도와 SGI가 택한 길은 속도를 희생하고 화면 품질을 챙기는 전략이었고, 그에 따른 엄청난 대가는 고스란히 레벨 디자이너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거대한 세상이 펼쳐져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위해, 레벨 디자인은 시야를 가리는 온갖 기법을 동원했다. 플레이어는 피치 성 주변이 시원하게 트여 있다고 느꼈지만, 실제 맵 구조는 좁고 굽이치는 형태로 교묘하게 접혀 있어 전체 지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는 거의 없었다.

시야에서 벗어난 먼 물체는 즉각 렌더링에서 잘려 나갔고, 그렇게 확보한 연산 자원을 가까운 배경 처리에 쏟아부었다. 수중 구간에는 물 표면 텍스처조차 아예 넣지 않았다. 시험 삼아 물 텍스처를 얹어보았으나 시야를 가려 게임 플레이를 해쳤기에 과감히 버린 것이다. 무한 계단 역시 끝없는 루프 구조가 아니라, 특정 지점을 밟는 순간 플레이어를 정확한 시작 좌표로 눈 깜짝할 사이에 순간이동시키는 방식이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플레이어는 눈치챌 수 없었다. 조작할 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 물리 법칙 따위는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철학이었다.

슈퍼 마리오 64 레벨 구조와 가시거리 최적화 그림: 굴절된 경로와 철저한 시야 컬링으로 안정적인 프레임 레이트를 확보한 레벨 디자인. 출처: NGC 매거진 인터뷰 / pixelatron

침묵이 감도는 사무실, 인터넷 연결조차 없던 시절

하드웨어와 연산력의 한계는 사무실 근무 방식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닌텐도 본사는 칸막이 없는 개방형 구조였으나, 엄격한 사내 규칙이 있었다. 바로 사적인 대화 금지였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관리자가 다가와 말없이 눈치를 주었고, 모두가 자리로 돌아가 입을 다물어야 했다. 당시 일본 전통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으로, 서구권 개발 스튜디오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정보 통제는 더욱 철저했다. 사옥 내부에는 인터넷망조차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1995년 쇼신카이(Shoshinkai) 전시회에서 N64가 세계 최초로 공개되었을 때, 핵심 개발팀 인원 중 단 한 명도 현장에 가지 않았다. 닌텐도는 외부의 설익은 반응과 잡음으로부터 개발진을 의도적으로 완벽히 격리했다.

이러한 폐쇄적인 환경은 외부 방해를 받지 않는 집중력 높은 팀을 만들어냈지만, 그 대가로 모든 문제 해결을 네 벽 안에서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정해진 기한에 마친 걸작, 그리고 업계를 떠난 두 사람

N64의 콘솔 출시 일정은 절대로 미룰 수 없는 마감선이었고, 게임은 반드시 기한을 맞춰야 했다. 다만 닌텐도의 ‘디렉터 책임제’는 약간의 숨통을 틔워주었다. 프로젝트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았기에, 정해진 일정표를 기계적으로 따르는 대신 2~3주의 폴리싱 기간을 추가로 요청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막바지 스퍼트 단계는 아수라장이었지만, 다행히 조직의 규율은 유지되었고 심각한 버그도 적었으며 핵심 게임 플레이도 제시간에 완성되었다.

1996년 6월 23일 일본에서 출시된 이 타이틀은 전 세계 누적 1,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아날로그 스틱을 통한 이동과 자유로운 카메라 시점은 이후 게임 산업의 기본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해당 인터뷰에는 평소 널리 회자되지 않는 서글픈 뒷이야기가 담겨 있다. 게임이 완성된 직후, 개발에 참여했던 프로그래머 두 명이 게임 업계를 완전히 떠났다. 게임이 싫어져서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심신을 하얗게 불태워버렸기 때문이었다.

100개의 시제품을 깎아내며 다듬은 컨트롤러, 수천 번의 재작성을 거쳐 탄생한 카메라, 절반을 숨겨서 겨우 넓어 보이게 만든 맵. 후대 개발자들이 황금률이라 칭송하는 이 표준은, 15명의 개발자가 심신을 깎아 먹으며 처절하게 갈아 넣은 대가였다.

참고 링크:

  • NGC 매거진 2001년 인터뷰 (Giles Goddard 무삭제 전문)
  • pixelatron 전문 블로그 기록
  • Hacker News 토론